법원 "죄질 불량하다"…호화 변호인단 앞뒤 안맞는 변론 오히려 '독'
양형기준 이후 재벌총수 일가 실형 확정 첫 사례


SK그룹 총수 형제가 27일 상고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제민주화 요구와 함께 재벌 총수에 대한 양형이 강화된 후 실형이 확정된 첫 케이스다.

이들 형제는 검찰 수사부터 최고 수준의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했으나 사법처리를 피해지 못했다.

오히려 변론 전략이 독이 됐다.

형제 입장에선 사건이 꼬일대로 꼬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 법원, 기업 범죄에 엄단 의지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수백억원대 회삿돈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태원(54) 회장의 상고심에서 원심처럼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최재원(51) 수석부회장에게도 원심과 같은 징역 3년 6월을 내렸다.

재벌 총수 형제를 동반 구속한 데 이어 실형까지 확정한 것은 기업 범죄에 대한 법원의 엄단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번 사건 1심은 "SK그룹을 대표하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우리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을 피고인의 형사 책임을 경감하게 하는 주요 사유로 삼는 데 반대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기본 입장은 항소심과 상고심까지 이어졌다.

특히 항소심은 1심에서 법정구속된 최 회장의 무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동생 최 부회장까지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했다.

앞서 서울고법은 이호진(52) 전 태광그룹 회장과 모친 이선애(86) 전 태광그룹 상무에게 각각 징역 4년 6월과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벌 총수 일가에 실형이 선고됐다는 점은 이 사건과 유사하다.

다만 태광 사건 상고심이 아직 선고되지 않은 점, 이 전 회장 모자가 현직이 아닌 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

최 회장 형제는 2009년 양형기준이 시행된 후 실형이 확정된 첫 케이스로 볼 수 있다.

◇ 호화 변호인단 사실상 유명무실
최 회장 형제는 검찰 수사와 1·2심을 거치면서 내내 우왕좌왕했다.

대형 로펌의 조력을 받았으나 변론의 흐름이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못했고 그 결과 재판부의 불신만 낳았다.

최 회장은 1심까지 계열사의 펀드 선지급금 출자에 관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김원홍(53) 전 SK해운 고문에게 돈이 송금된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는 항소심에서 펀드 출자를 지시했으나 정상적인 전략적 펀드였다고 말을 바꿨다가 뒤늦게 "사실은 일반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비정상적 펀드였다"며 한 번 더 진술을 번복했다.

이 과정에서 차례로 선임된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태평양·지평 등 호화 변호인단이 서로 앞뒤가 안 맞는 변론을 했다.

최 부회장은 형과 반대였다.

처음에는 자신이 범행을 주도했다고 자백했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애당초 형의 '방어막'이 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항소심은 이에 "무죄인 최재원이 무죄인 최태원을 보호하기 위해 자백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둘 다 유죄라고 판단했다.

최 회장 형제는 항소심에서 무죄의 증거로 제시한 통화 녹취록이 유죄의 증거로 인정되는 등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시도가 번번이 실패했다.

◇ 사적 이익 위한 범행인 점에 주목
최 회장은 항소심에서 동생에 대한 `마음의 빚'을 수차례 토로했다.

선친이 작고한 뒤 최 부회장이 상속 지분을 포기해 미안함을 느꼈고 옵션 투자로 돈을 벌어 동생에게 나눠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이 일종의 '멘토'였던 김원홍 전 고문에게 거액의 투자금을 송금하고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하자 '물타기'를 위해 그룹 계열사 펀드 출자금까지 빼돌리게 됐다는 게 이 사건의 얼개였다.

하지만 법원은 형제간 우애를 바탕으로 한 선처 호소에 귀 기울이는 대신 사적인 이익을 위해 주식회사 자금을 멋대로 사용한 점에 주목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허황되고 탐욕스러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계열사 자금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법원이 김승연(62) 한화그룹 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주면서 "기업주가 회사 자산을 자신의 개인적 치부를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 전형적인 사안과 거리가 있다"고 한 부분과 대조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날 판결 직후 "재계 서열 3위 SK그룹의 회장과 부회장이 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유용한 행위 등에 엄정한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