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자리, 제조업의 서비스화에 있다
IBM은 제조기업인가, 서비스기업인가. 단순한 질문 같지만 답은 그리 녹록지 않다. 2004년 개인용 PC사업 부문을 중국기업에 매각한 IBM의 매출 80%는 현재 컨설팅, IT서비스, 소프트웨어 등 서비스 부문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흔들림 없는 IBM의 성장 동인을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IT서비스 중심으로 재편성한 데서 찾는다.

IBM만이 아니다. GM은 자동차 한 대를 팔 때마다 제품 가격의 세 배에 달하는 수익을 서비스 부문에서 얻고 있다. GPS와 스마트폰을 결합한 텔레매틱스 서비스 온스타(OnStar) 프로그램을 도입해 도로 안내, 긴급구조, 도난차량 추적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분야의 지각변동이 거세다. 제품이 주도하던 시장이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경쟁사와의 차별화 포인트를 제품 서비스화에서 찾으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 소비자도 이제는 제품만이 아니라 그 제품을 통해 구현되는 서비스를 함께 산다고 봐야 한다. 정수기를 사는 게 아니라 정수 서비스를, 스마트폰을 산다기보다 앱 서비스를 사는 식이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수익이 커지면 고용도 늘기 마련이다. 제품에 서비스를 결합해 제품 자체의 부가가치를 새롭게 창출하는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고용 없는 성장시대를 극복할 대안으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2000~2011년 국내 제조업이 53만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동안 서비스산업은 약 356만개의 일자리를 견인했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같은 기간 양질의 일자리 비중은 제조업에서 12.2%포인트(22.6%→34.8%) 증가해 서비스산업의 2.2%포인트(27.6%→29.8%)를 크게 웃돌았다. 좋은 일자리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치다. 따라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제조업의 서비스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조업의 서비스화’는 제조업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는 주력산업에 서비스를 결합해 제조업의 지속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전략이다. 더욱이 제조업이냐, 서비스업이냐를 가르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양측은 이미 활발하게 섞이고 있다. 서로 밀어내던 것들이 접촉하고 소통하며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화학작용이 일어난 곳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어 풍성한 열매로 맺히게 되는 것, 이것이 융합이고, 우리가 창조경제를 추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의 경영전략가이자 창조경제의 창시자 존 호킨스에 따르면 창조경제란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양한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이뤄왔고, 아직까지도 제조업이 50%를 웃돌 만큼 비중이 높지만 일자리 창출 전망은 어둡지 않다. 제조업의 서비스화, 즉 지식서비스산업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데 꼭 필요한 정보기술(IT) 기반의 비옥한 토양을 확보하고 있어서다. 정부도 지난해 5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을 제조서비스 전문연구센터로 지정, 제조 지원서비스 플랫폼 개발 등 국가 차원의 지식서비스를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추진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식서비스화는 원천기술 개발 및 원가 절감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 더욱 유용한 전략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한 화학적 결합으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판매 지향적 산업을 관계 지향적 산업으로 바꾸는 일, 제조업의 서비스화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이영수 <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