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창의+원칙·준법='하이브리드人' 삼성인재
글로벌헬프데스크 외국어생활관 근골격계예방센터 힐리언스명상센터 경력컨설팅센터 창의개발연구소… 이런 희한한 조직과 연구소를 가진 국내 기업은 어디일까.

바로 삼성전자다. 이 회사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이 같은 연구소와 지원센터 등을 잇따라 개설했다. 근골격계예방센터는 임직원들 육체적 건강, 힐리언스명상센터는 정신적 건강을 돕기 위해, 외국어생활관 등은 능력 개발을 위해 건립했다. 또 퇴직자를 위해 경력컨설팅센터를 만들어 전직을 돕고 있다. 이같이 건강, 복지, 퇴직후 지원까지 회사가 챙기며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자 우수한 인재들이 삼성전자로 몰리고 있다. 인사가 삼성전자의 성공을 이뤄낸 밑바탕으로 분석되는 이유다.
자율·창의+원칙·준법='하이브리드人' 삼성인재
삼성전자 인사팀은 2000년대 후반 들어 커다란 도전을 맞았다. 2008년 16만명이던 임직원은 올 9월 말 32만6000명으로 5년 새 두 배 이상 늘었다. 매출이 2008년 121조원에서 올해 230조원 이상으로 증가하면서 다양한 인력 수요가 생겨서다.

갑작스런 인력 증가에다 애플,구글 등 창의력을 기반으로 세계 IT 업계를 선도하는 회사들을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삼성은 △창의성 확보 △글로벌 인재 육성 △다양성 확대 등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여기에 △깨끗한 조직문화 △일체감 유지 등 기존의 삼성 특유의 장점은 지켜야 했다.

문제는 이들이 서로 충돌하는 가치란 점이다. 예를 들어 창의성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자율출근 등을 실시했더니 삼성 특유의 일체감과 조직력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것이다. 삼성전자 인사팀은 이를 어떻게 해결해 조직을 발전시키고 또 다른 성공을 배태시키고 있을까.

한국경제신문은 삼성전자 인사팀이 최근 펴낸 책자 ‘하이브리드 삼성:혁신이 묻고 인사가 답하다’를 입수해 이 같은 비밀을 엿봤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충돌하는 가치를 ‘하이브리드’로 해결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역량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가치들을 분석해 5가지 해결해야 할 패러독스를 만들고, 이를 풀기 위해 여러가지 하이브리드식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사 전문가는 “삼성이 글로벌 조직으로 발전하면서 서양의 자본주의 개인주의에 기반한 인사기법으로 풀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을 한국식 자본주의를 섞어 풀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패러독스와 추진중인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영국 런던에 있는 삼성전자 유럽디자인연구소. 글로벌 인력들이 맘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분방하게 근무공간을 꾸며 놓았다. 삼성전자 제공
영국 런던에 있는 삼성전자 유럽디자인연구소. 글로벌 인력들이 맘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분방하게 근무공간을 꾸며 놓았다. 삼성전자 제공
1 자율·창의 높이되 원칙 준수

2007년 애플발 스마트폰 폭풍이 몰아치자 2008년 4분기 삼성전자는 2000년 이후 첫 적자를 낸다. 그때부터 ‘퍼스트무버(시장 선도자)’가 되겠다며 임직원들의 창의력 북돋우기에 돌입한다. 오후 1시까지 출근해 하루 8시간만 일하면 되는 자율출근제, 회의방식 문서작성 등 업무 전반에 걸쳐 규칙을 만들어 잡무를 줄이는 워크스마트, 근무복장을 자유롭게 한 자율복장제가 도입된 게 그 무렵이다. 2012년에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면 1년간 회사 지원하에 마음껏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랩(C랩)이 도입됐다. 현재 시각장애인용 공간인지기구 등 20여개 C랩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자율·창의성 확대가 자칫 ‘관리’ 원칙을 흔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왔다. 삼성은 이를 룰과 프로세스 준수, 준법경영 등을 강화하면서 해결하고 있다.

2 역동과 안정 사이 미래 준비

변화하지 못하면 금세 몰락하는 게 지금의 IT 사업환경이다. 노키아가 대표적인 예다. 임직원 32만명으로 불어난 삼성전자가 조직에 지속적으로 위기감, 역동성을 불어넣기 위해 최근 바꾼 가장 큰 변화는 ‘수시인사·수시조직개편’ 도입이다. 매년 12월 초 정기인사·조직개편 외에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인사와 조직을 바꾸는 것이다. 작년 6월 박재순 한국총괄(부사장)을 중국총괄로 발령내는 등 해외총괄들을 교체했고 올해도 지난 7월 북미총괄 미국통신법인(STA)장과 아프리카, 동남아총괄의 자리를 연쇄적으로 바꿨다.

발탁승진도 2010년부터 크게 확대되고 있다. 연공주의 인사관행을 깨려는 것이다. 올해 삼성그룹 임원 승진자 475명 중 승진연한에 앞서 발탁된 사람이 85명(17.8%)이다. 지난해 74명보다 15%나 늘었다.

2009년 시작된 잡포스팅도 조직 내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신규 사업 등을 추진하는 등 인력 수요가 발생할 때 외부 채용에 앞서 내부에 알려 희망자를 옮겨준다. 임직원 만족도가 높아 처음엔 분기별로 하던 잡포스팅이 최근엔 매달 이뤄진다.

지나치게 역동성만 강조할 경우 피로감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라이브’라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구축해 임직원 의견을 경청하고 있으며 근골격계예방센터, 힐리언스명상센터 등을 만들어 임직원들의 건강과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3 다양성 속 일체감 유지

“서울 지역 대학, 강남 출신의 오렌지족이 신입사원 중에 너무 많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된 게 지방대, 저소득층을 공채에서 우대하는 열린채용이다. 다양성이 있어야 창의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등 여성과 장애인이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들고 있다.

디자인 소프트웨어 인력 등을 뽑을 때는 영어 필기시험 등이 아니라 에세이와 작품 포트폴리오 등을 보고 선발한다. ‘끼’ 있는 우수 인재를 채용하기 위한 것이다.

다양성을 갖추면서도 삼성의 강점인 일체감은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삼성전자는 비전과 목표를 모두가 공유해 한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신입입문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매분기 사업부별로 사장들이 경영현황설명회를 열어 임직원에게 회사 사정을 설명한다. 신입사원 입문교육의 일환으로 삼성그룹 전체 신입사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하계수련대회를 개최한다. 1987년 시작된 이 행사는 삼성의 핵심가치를 주제로 만든 창작공연을 하는 등 삼성만의 일체감을 갖도록 입사 초기부터 관리하고 있다.

4 세계 속 한국…한국 속 세계

임직원 32만명 중 20만명 가까이가 외국인이다. 세계 217개 사업장에 흩어져 있는 이들을 관리하는 게 삼성전자 인사팀이 겪는 가장 큰 도전이다.

삼성전자는 한국 방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상호교류와 이해를 기반으로 소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한국인 임직원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조건없이 해외에 파견해 경험을 넓히도록 하는 지역전문가, 해외법인에서 6개월~1년가량 일하며 현지어를 배우는 현장전문가 과정 등을 설치해 글로벌 감각을 키워주고 있으며 10주 교육기간 중 한마디라도 한국어를 쓰면 퇴실시키는 외국어생활관을 운영중이다.

해외 인재 육성을 위해 주거비 등 모든 비용을 지원해 1년간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일하게 하는 글로벌 모빌리티 프로그램을 2009년 시작했으며, 특히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글로벌헬프데스크를 설치, 비자 취득부터 고지서 납부까지 각종 생활 불편을 해결해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게 글로벌전략그룹과 삼성이문화적응지수(SCAI)다. 글로벌전략그룹은 해외 경영대학원(MBA) 출신 50여명으로 구성된 컨설팅팀이다. 이들은 컨설팅을 하다가 사업부에 실전배치되거나 해외에 파견되는 등 삼성의 핵심 인재로 자란다. SCAI는 한국인 해외파견 인력을 대상으로 현지 문화를 이해할 자세가 돼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만들었다. 2009년부터는 해외총괄을 대상으로 ‘어세스먼트(평가)센터’를 만들어 해외영업을 책임질 수 있는지 자질 및 역량검사를 강화했다.

5 치열한 경쟁 속 따뜻한 배려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이익을 많이 내야 할 뿐 아니라 사회를 위해 가치있게 써야 한다. 삼성은 더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부단히 위기의식과 긴장을 불어넣고 있다. TV와 스마트폰, 메모리 반도체에서 일군 성공신화를 전파하고 재생산하며 임직원들이 뛰도록 만든다.

또 임직원들이 참여하는 다각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상생경영을 통해 중소 협력사를 지원하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 각지에서 사회공헌을 확대하고 있다. ‘비즈니스는 냉정하게, 사회공헌은 따뜻하게’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임직원이 매달 월급에서 일부를 자발적으로 내는 사회공헌기금이 2011년 이후 매년 100억원이 넘고 있다. 임직원들은 또 ‘청소년 진로 멘토링’ 등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에 대한 고마움과 애사심을 키우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