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봉 대주·KC그룹 회장이 지난 23일 인천시 사동 대주중공업 본사에서 이글패를 들고 웃고 있다. 그는 “골프와 경영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기열 기자
박주봉 대주·KC그룹 회장이 지난 23일 인천시 사동 대주중공업 본사에서 이글패를 들고 웃고 있다. 그는 “골프와 경영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기열 기자
“골프를 하면서 룰을 엄격하게 지켜왔습니다. 남 몰래 반칙을 할 수도 있겠지만 골프를 통해 원칙을 지키는 기업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줬죠.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경쟁의 룰을 지키는 원칙주의자로서 행동했습니다.”

구력 24년의 박주봉 대주·KC그룹 회장(56)은 골프와 경영에서 원칙주의를 강조했다. 맨손으로 시작해 25년 동안 연 매출 1조2300억원의 중견기업을 일궈낸 박 회장을 지난 23일 인천 사동 대주중공업 본사에서 만났다.

박 회장은 학비를 스스로 벌어 힘들게 중·고교를 졸업했다. 군대 제대 후 회사생활 1년 동안 번 170만원을 털어 트럭 한 대를 샀다. 그렇게 1988년 물류업체 대주개발로 시작한 회사를 지금은 철강, 화학, 물류, 건설 등 4개 부문으로 이뤄진 대주·KC그룹으로 키워냈다.

2010년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으며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체육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2008년엔 대한체육회(KOC)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대한탁구협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25년간 사업을 하면서 골프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거래처 사람들에게 골프를 배우라고 권유하고 머리를 얹어주면서 그들의 평생 스승이 됐죠. 그 과정에서 골프를 함께 치면서 엄격하게 룰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신뢰를 쌓아 영업이 잘됐습니다.”

박 회장은 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원칙주의’를 고수했다. 2001년 기초화학소재 분야 공기업인 한국종합화학을 인수했다. 그 과정에서 스미토모화학, 슈와덴코 등 세계적 수준의 일본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덤핑 공세를 폈다. 한국종합화학은 민영화 6개월 만에 국내 시장을 거의 다 내주고 고사 직전까지 갔다.

박 회장은 위기에서 정공법을 폈다. 그는 “기존 거래처를 찾아가 한국종합화학이 지금 무너져 국내 시장을 일본 업체에 내주면 원료 가격이 예전처럼 크게 뛸 수 있다며 일부라도 우리 제품을 써달라고 설득했다”며 “비공식적으로 로비를 하지 않고 원칙대로 설득한 게 효과를 봤고 지금은 시장 점유율을 70%까지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사업을 시작한 이듬해인 1989년 친구의 권유로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그는 “연습장을 두 번밖에 가지 않았는데 친구와 함께 과천 경마장 안에 있던 6홀 골프장에 머리를 올리러 갔다”며 “첫홀에서 티샷을 남의 그린으로 날릴 정도로 무지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제대로 쳐야겠다는 승부욕이 발동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집 마당에서 빈 스윙을 하며 연습했고 라운드를 나가면 매번 36홀 이상을 돌 정도로 집중적으로 쳤다. 박 회장은 “남다른 승부욕으로 입문 3년 만인 1992년 싱글에 진입했고 베스트스코어는 3언더파”라며 “당시엔 드라이버로 300야드씩 날렸다”고 했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골프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현재 핸디캡은 13이다.

홀인원은 못해봤지만 이글은 20여개를 성공시켰다. 그 가운데 싱가포르 센토사GC에서 기록한 이글은 박 회장에게 특별했다. 그는 “2002년 11월 처음으로 해외에서 골프를 쳤는데 바다를 끼고 있는 전장 460m의 파5홀이었다”며 “아주 어려운 코스였는데 2온에 성공하고 3~4m 거리에서 한 퍼트가 홀로 빨려들어가면서 해외 첫 이글의 기쁨을 맛봤다”며 웃었다.

“지금도 골프에 대해 스스로 두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중에는 일에 전념하고 주말에도 하루만 골프를 칩니다. 건강을 위해 라운드 도중 카트를 절대 타지 않고 18홀을 모두 걷고 있습니다. 일과 골프, 건강을 조화롭게 지켜가려고 합니다.”

인천=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