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레드’. (우) 충무아트홀 무대에 올려진 연극 ‘스테디 레인’.
(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레드’. (우) 충무아트홀 무대에 올려진 연극 ‘스테디 레인’.
남성 2인극의 진수를 보여주는 연극 두 편이 연말 무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지난 20일 막이 오른 ‘레드’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루에서 21일부터 공연 중인 ‘스테디 레인’이다.

두 작품 모두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모은 히트작으로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로 공연하는 번역극이다. 남자 배우 둘만 등장하는 2인극이지만 주제와 소재,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분위기는 판이하다.

‘레드’가 사실주의적이고 지적이고 세련된 연극인 반면, ‘스테디 레인’은 어둡고 음산한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킬 만큼 거칠고 원초적이다.

‘레드’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1907~1970)가 1958년 뉴욕 시그램빌딩 최고급 식당인 ‘포시즌스’에 들어갈 벽화를 거액에 의뢰받고 2년 동안 벽화 40장을 완성했다가 돌연 계약을 파기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자연광이 차단된 로스코의 작업실에서 그와 가상 조수 켄이 이 기간에 함께 작업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연극의 전부다.

로스코는 켄이 마치 제자라도 된 듯이 예술관과 동시대의 화가들, 레드·블랙 등 색의 본질에 대해 문답식으로 가르치려 든다. 켄은 처음에는 묵묵히 듣다가 차츰 조심스레 의견을 내놓고 결국엔 거친 설전까지 벌인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과 여러 예술 사조를 논할 때는 현학적이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와 언쟁 속에 예술을 넘어 그들의 고통과 삶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감동은 시작된다. 암전이 될 때마다 시간이 흘러 둘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고 달라지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와 TV를 넘나드는 중견 배우 강신일이 로스코 역을 맡아 깊이 있고 섬세한 연기를 펼친다. 켄 역에는 강필석과 한지상이 번갈아 나온다. 공연은 내년 1월26일까지. 3만5000~5만원.

‘스테디 레인’은 2009년 할리우드 스타 배우 휴 잭맨과 대니얼 크레이그가 미국 브로드웨이 공연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작품. 시카고 우범지역을 담당하는 경찰 파트너이자 단짝 친구인 조이와 대니가 주인공이다. 극은 두 사람이 관객들에게 지나간 사건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입이 걸고 다혈질인 대니는 ‘단란하고 풍요로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부정을 저질러도 된다고 믿는다. 자포자기한 삶을 사는 듯한 조이는 그런 대니를 방조한다. 대니는 어느 날 집으로 날아온 총알에 가정의 평화가 위협받자 폭주하고, 잔혹한 범죄에 휘말리면서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책상과 의자 두 개만 덩그러니 놓인 무대에서 두 배우는 110여분 동안 오직 치고받는 대사와 독백으로만 입체적이고 실감 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대니와 조이의 캐릭터가 다소 전형적이긴 하지만 무대에서 살아 숨 쉰다. 두 캐릭터가 팽팽히 맞서고 대립할 때 놀라운 긴장감을 불러온다. 잘 짜인 구성과 배우들의 호연이 결합된 2인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연극적 재미다. 이석준과 이명행, 문종원과 지현준이 콤비를 이뤄 출연한다. 공연은 내년 1월29일까지, 4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