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정원 개혁과 의회정치의 복원
최근 몇 달 한국 정치는 국가정보원 관련 이슈들로 요동쳤다. 여야는 국기 문란 논란을 벌이며 막말을 주고받았지만 국민에게는 ‘정치권 그들만의 싸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6개월 남짓. 새로운 비전과 성장동력을 찾아가야 할 이 중요한 시점에 국회와 정부 모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논란을 키우는 일이 많고 국회는 ‘국정원 회오리’에 휩쓸려 사실상 공전 상태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는 누구나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사건 발표 시점과 관련해서는 미묘한 부분이 없지 않다. 왜 국정원 개혁이 문제되고 있는 시점에 수사를 공개했는지, 국면전환용이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3년 이상 내사를 벌여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이고 또 수사결과를 언제 어떻게 발표해야 한다는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석기 사건’은 진위 여부를 떠나,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해 국내파트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한 것에 대해 국정원이 ‘국정원식으로’ 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회의원이 내란을 모의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국정원 국내파트 폐지론이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무책임한 발상인지 통박하고 싶었을 것이다. 국정원이 국정원 개혁이라는 정치 현안과 관련해 자신의 주장을 뚜렷이 밝히고 있는 셈이다.

국정원의 지난번 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 녹취록 공개나 이번 이 의원 내란음모사건 발표가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정치 관여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내란음모사건 수사 발표나 압수수색 자체는 국정원 본연의 업무에 속한다는 점에서 이를 두고 정치 관여라고 하기는 어렵다.

반면 국정원법 제9조에서 금지하는 행위, 즉 그 직위를 이용해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런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해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그리고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하거나 선거 관련 대책회의에 관여하는 행위를 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이미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와 있고 법원에서 이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정치적 의미나 영향을 갖는 정보나 사실을 활용해 사실상 정치행위를 한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주는 건 국정원의 신뢰 제고 등을 위해서도 온당하지 않다.

더욱이 민생 현안이 산적한 정권 초기에 정치권이 국정원 이슈에 매몰돼 있는 건 더 큰 문제다. 청년 일자리 창출, 경제 불황 타개 등 당장 손쓰지 않으면 국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과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개혁과 관련한 중심 인물이 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정원 문제가 발단이 돼 얽힐 대로 얽혀버린 실타래를 누가 어떻게 푸느냐이다.

누구보다도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국정원법에 명시돼 있듯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 국가기관이다. 국정원 같이 조직응집력이 강한 기관은 위기가 닥치면 자기보호본능에서 무리수를 감행하는 일이 종종 빚어지곤 한다. 상식적으로는 최근 일련의 국정원 발표들이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 없이 이뤄졌다고 보긴 어렵다.

이제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하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국민신뢰 회복 차원에서라도 국정원의 정치 관여를 금하겠다고 밝히고 여야가 함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야당도 과감하게 버릴 건 버려야 한다. 큰 줄기를 잡아 꼬인 정국을 유연하게 풀어 나가야 한다. 국정원 개혁은 국회가 중심이 돼 다룰 문제라는 합의가 필요하다. 이번 문제를 잘만 풀어 나간다면 의회정치 복원을 위한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