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묵(68)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이 14일 법정에 출석해 조현오(58) 전 경찰청장에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조 전 청장이 지난달 23일 공판준비기일에서 임 전 이사장을 자신의 차명계좌 발언 출처로 지목한 것과 정면 배치되는 진술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전주혜 부장판사) 심리로 이날 열린 첫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임 전 이사장은 "2010년 봄이나 여름에 지인들과 함께 조 전 청장을 처음 만났다"며 "그해 3월 서울 하얏트호텔 일식당에서 단둘이 만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임 전 이사장은 "더구나 조 전 청장에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나 차명계좌에 관해 얘기를 한 적이 없다"며 "차명계좌 얘기는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된 것을 아는 것이 전부"라고 강조했다.

그는 "1972년부터 26년 동안 안기부에서 근무했고, 1980년대 초반 대검과 서울지검에 출입했다"며 "김경한·이귀남 전 법무부장관을 알지만, 과거 대검 중수부 고위 관계자들과는 교분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내가 대통령을 독대하거나 정보력이 매우 뛰어났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며 "조 전 청장은 지난 3년 동안 1년에 한두 차례씩 만나면서 아무 말 안 하다가 갑자기 왜 나를 지목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조 전 청장은 2010년 3월 31일 강연에서 말한 내용은 그로부터 불과 며칠 전에 임 전 이사장과 단둘이 저녁식사를 하다가 들은 그대로를 전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조 전 청장 측 변호인은 2010년 3월 당시 서울 하얏트호텔 일식당 예약 자료에 임 전 이사장 이름이 남아있을 것으로 보고 사실조회를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날 공판에는 전직 대검 중수부 자금추적 담당 수사관한테 차명계좌 얘기를 듣고 조 전 청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 소속 김모(56) 경감도 출석해 증언했다.

김씨는 "고향 선배인 전직 대검 중수부 수사관과 2010년 12월부터 작년 9월까지 열 차례 이상 만나면서 퍼즐 맞추듯이 차명계좌 얘기를 조금씩 들었다"며 "이를 조 전 청장에게 개인적으로 알려줬다"고 말했다.

조 전 청장은 1심에서 2010년 3월 강연 직전 '유력인사'에게 우연히 차명계좌 얘기를 들었고, 그해 8월 강연 내용이 보도된 후 대검 중수부 최고 책임자와 경찰 정보관에게서 각각 더 자세한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항소심에서는 발언 출처를 절대 밝힐 수 없다던 종전 태도를 바꾸고, 임 전 이사장과 김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조 전 청장은 일선 기동대장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바로 전날 10만원권 수표가 입금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는 취지로 말해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지난 2월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그는 강연 발언 출처를 밝히겠다고 해 구속된지 8일 만에 풀려났다.

두 번째 공판은 다음 달 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