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잇달아 호전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대외적인 목적보다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는 전문가의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오벌린 칼리지의 쉴라 미요시 제이거(동아시아학과) 부교수는 14일(현지시간) `국내 정치, 평양스타일' 이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북한이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함에 따라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할 위험성이 더욱 높아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북한의 위협이 남한과 미국을 비핵화 회담으로 끌어들여 경제적 지원과 양보를 얻어내려는 속셈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최근의 역사를 보면 국제 정치보다는 내부의 우려가 더 크게 작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체제가 정치적 불안정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침략에 대한 공포심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제이커 부교수는 제3차 핵실험 이후 지속된 북한의 거친 언사들은 냉전체제의 종식으로 북한 경제가 완전히 거덜났던 1990년대의 패턴과 유사하다며 현재 북한에서는 만성적 기근과 국제적 고립에 직면한 상황에서 중국 의존도가 날로 커지는데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과거 수십년간 중국의 외교적, 재정적 도움에 기대어 살았지만 중국이 2002년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킨 동북공정에 착수하고 북한에 대한 투자들 대대적으로 확대하면서 양국 관계가 다소 변질됐다는 인식이다.

실제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투자액은 60억달러(2011년 기준)를 넘었다.

북한은 현재 에너지의 90%와 소비재의 80%, 식량의 45%를 중국에 의존한다.

제이커 부교수에 따르면 서방 전문가들은 북한이 전체주의 국가여서 내부 여론이란 것이 무의미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비록 조작된 것이라도 국민의 절대적 지지야 말로 70년의 세습정권을 가능케 한 기반이었다.

하지만 동북공정 과정에서 북한이 헤이룽장과 지린, 랴오닝성에 이어 중국 동북부 제4의 성(省)으로 전락하는 듯한 양상이 나타나면서 북한 정권이 내우외환의 위기에 빠져들었다.

예전에는 남한은 미국의 앞잡이일 뿐 한반도에서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국가는 북한이라는 주체사상의 구호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는 그런 논리가 먹혀들지 않을 만큼 중국 의존도가 커졌고 그동안 속고 살았다는 주민들의 불만도 날로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정은 체제는 내부 결속을 위해 중국의 `우호적인 잠식'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주체사상의 원칙을 재확인할 수 밖에 없었고 남한과 미국에 대한 위협도 같은 맥락이라고 제이커 부교수는 판단했다.

제이커 부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정책 방향성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남한에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면서 특히 최근의 잇단 협박은 남북한의 기나긴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마저 포기하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오벌린 칼리지는 진보주의 성향이 강한 명문 사립대이며, 제이커 부교수는 조만간 `전쟁 중인 형제들 ; 한국의 끝없는 분쟁'이란 제목의 한반도 관련 책을 낼 예정이다.

(뉴욕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wolf8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