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맞은 구자경 명예회장 "세월이 쏜살같아…"
“세월이 유수 같고 쏜살 같다는 말이 정말 실감납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우리 나이로 88세, 미수(米壽)를 맞았다. 구 명예회장은 지난 24일 오후 6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미수연에 참석해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구 명예회장은 맏아들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가족을 대표해 축하인사를 할 때는 시종일관 웃음을 지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구 회장은 “한평생 소중한 청춘을 바치시면서 LG라는 큰 밭을 일궜고 모든 LG 임직원들에게 훌륭한 본을 보이셨다”며 “언제나 저희들의 든든한 언덕이 돼주시고 사람이 옳게 사는 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아버님의 귀한 사랑과 은혜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구 명예회장은 “세월이 유수와 같고 쏜살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며 “이렇게 찾아와서 축하해주시니 고맙다”고 화답했다. 이어 축하떡을 자를 때는 전성기 때 못지않은 힘을 과시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본인의 인생을 정리한 7분짜리 영상물을 볼 때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시울을 적셨다. 1925년 경남 진주 지수면 승산리에서 태어나 1995년 그룹 회장에서 물러날 때까지의 70년을 정리한 내용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자신의 아호를 ‘상남’으로 직접 짓기도 했다. 본인이 집안 내에서 항렬은 낮으면서 나이가 많은 것을 의식해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삼촌들이 자신을 쉽게 부를 수 있도록 고향집 앞의 작은 다리인 ‘상남(上南)교’에서 아호를 따왔다.

구 명예회장은 1950년 LG화학 이사로 경영에 첫발을 내디딘 후 1970년 부친인 구인회 LG 창업주에 이어 LG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재임 기간 동안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권한을 이양하며 ‘자율경영 체제’를 확립하는 한편 ‘인간 존중’의 LG그룹 경영철학도 정립했다.

1995년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넘겨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 있는 천안연암대 근처 농장에서 난과 버섯 등을 키우며 전통식품 연구에 몰두해왔다. 본인이 세운 천안연암대와 경남 진주에 있는 연암공업대 업무 외에 그룹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다만 매주 월요일 오전에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로 출근해 본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LG연암문화재단 및 LG연암학원, LG복지재단 등의 현황을 챙기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를 맡고 있는 차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3남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4남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과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LG전자 차장 등 직계 자손들이 모두 참석했다. 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구자원 LIG 회장, 구자열 LS전선 회장, 구자철 한성 회장 등 사촌형제들과 허창수 GS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등 범LG가에서 10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특히 그동안 외부에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던 LG가의 여성들도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구본무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씨, 큰 딸인 연경 씨, 구본능 회장의 부인 차경숙 씨, 구본준 부회장의 부인 김은미 씨 등이 참석했다. 당초 2시간으로 예정된 이날 행사는 오후 9시 넘어 끝났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