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블랙박스' 드로잉으로 현대미술 50년 엿볼까
드로잉은 화가의 상상이 시작되는 ‘감성의 블랙박스’다. 작가의 기술을 시험하는 연습장이며 감정, 생각을 담은 메모장이기도 하다. 거칠고, 솔직하고, 왕성한 작가의 예술혼이 담겨 있기에 드로잉은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국 현대미술 반세기의 발자취를 드로잉 작품을 통해 살펴보는 ‘한국 드로잉 50년’전이 5~1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펼쳐진다.

국내 드로잉 작품 전시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작고 작가 임직순을 비롯해 구자승 강덕창 권희연 김선이 김익모 김춘수 김춘옥 김홍태 문우식 박선희 배상하 백금남 신문용 신제남 우상호 윤종구 원문자 이건용 장지원 정명희 정정식 최상철 최수 최정수 홍석창 씨 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모두 500여점이 걸린다. 연필이나 콩테, 펜, 수묵으로 그린 전형적인 종이 그림이 주축을 이루지만 드로잉의 고정관념을 넘어선 회화 사진 작업도 포함됐다. 밑그림 정도로 여겨지는 전통적인 드로잉 개념에서 벗어나 작가의 실험적인 태도나 완성된 화풍을 만들기 전 고민이 담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임직순 씨의 작품은 내면의 울림을 빠른 붓질로 화폭에 담아내는 드로잉적인 방식으로 작업한 것이고, 구상회화의 대가 구자승 씨의 작품은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목탄으로 그린 에로틱한 소품이다. 또 한국화가 문인상 씨는 수묵으로 그린 여체의 관능적 에로티시즘, 홍석창 씨는 화려한 꽃을 수묵으로 거칠게 그린 ‘꽃의 랩소디’, 서양화가 성치영 씨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농업의 여신 ‘데미테르’를 소재로 물질문명에 찌든 현대인의 모습을 찰지게 드로잉한 작품을 내놓는다.

이번 전시회 운영위원장인 구자승 씨는 “참여 작가들은 작품 속에 자신만의 생각을 잘 녹여내기 위해 ‘한 획’을 그리면서 수많은 실험과 연습을 했다”며 “이번 전시에는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소개된다”고 말했다. 관람료는 없다. (02)720-978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