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길들임의 철학' 을 만든 집과 사막
“사람들은 각자 유년 시절이라는 이 큰 영지에서 태어난 것이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 나는 내 나라에 속해 있듯이 나의 유년 시절에서 나왔다.”

‘어린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가 ‘인간의 대지’에서 한 말이다. 그의 표현처럼 그는 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 시절로 돌아가려 했다. 그가 실종되기 전 마지막 간 비행도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 인근이었다.

생텍쥐페리는 네 살 때 부친을 여의고 귀족인 외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친척의 저택에서 번갈아 살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는 저택에서 마치 ‘어린왕자’처럼 자랐던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라몰 성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저택 앞에는 정원이 잘 가꿔져 있고 후원은 숲이 우거졌었다. 그는 숲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나무에도 오르고 수영과 낚시질에 다람쥐, 토끼, 달팽이들과 장난하고 기르고 길들였다. 그가 훗날 사하라사막에서 여우를 길들이며 이른바 ‘길들임의 철학’을 낳은 것도 어린 시절 덕분이었다. 말하자면 생텍쥐페리의 육체와 정신을 키워준 최초의 공간은 자연 속에서 동식물을 길들이며 몽상의 세계로 이끈 어린 시절의 ‘집’이었다.

생텍쥐페리가(家)는 가문의 이름이 베르사유궁의 십자군실에 등재될 정도로 1000년의 역사가 넘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다. 프랑스 왕정복고 때 말레스코 성을 하사받지만 앙투안의 할아버지 페르낭(백작)에 이르러 성을 팔고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군수를 지낸 할아버지는 보험회사를 설립했고 생텍쥐페리의 아버지 장도 연대 용기병으로 있다 보험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어머니 마리 드 퐁소콜롱브는 프로방스의 귀족(남작)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작곡가와 성가대 지휘자로 대대로 음악가 집안이었다. 어머니 마리는 음악과 시, 미술에 뛰어났고 그녀가 그린 파스텔 그림은 리옹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어머니는 직접 생업에 종사하며 2남3녀 자녀들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게 하면서 안데르센 동화책을 읽어주곤 했다. 시를 좋아한 생텍쥐페리는 어머니가 준 보들레르의 시집을 읽고 그 느낌을 편지로 보내기도 했다. 마리는 남편을 잃고 여러 집을 전전하며 자녀를 키웠지만 헌신적으로 아이들의 지적 성장을 이끌었던 것이다.

유년기에 시작한 ‘길들이기’ 놀이는 생텍쥐페리가 조종사로 취직해 사막에서 근무할 때로 이어진다. 그는 1927년 비행장 주임으로 발령받아 18개월 동안 사하라사막의 요새에서 지낸다. 그는 요새에서 영양들이나 카멜레온, 사막의 작은 여우 등을 길동무로 삼고 길들이기도 했다. 그는 불시착 비행기를 구출하고 생명조차 위협하는 사막의 무어인들과 때로 싸우고 협상하며 사막의 법칙을 알게 된다. 사막에서 자신을 길들이며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한편 사막의 세계를 배우고 그 사막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의 미완의 유작인 ‘성채’의 무대가 이 사막이고, 작가로서 처녀작인 ‘남방우편기’가 이 시절 사막에서 쓰였다. 나아가 집과 사막에서 길들이기의 기억을 바탕으로 ‘어린왕자’를 쓸 수 있었다. ‘인간의 대지’에서도 이 시절 사막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집’이 유년 시절의 생텍쥐페리에게 영향을 끼친 무대라면 ‘사막’은 20대 이후 그의 정신을 형성한 또 하나의 무대다. 집과 사막은 그의 길들임의 사상을 고양시키는 거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어린왕자’를 통해 우리 인간들을 길들이고 있다.

최효찬 < 연세대 연구원·자녀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