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제가 연주 전에 말하는 걸 꺼리지만… 이번 폭우와 산사태로 인해 희생된 분들과 상처 입은 모든 분들께 이 음악을 바칩니다. 여러분 모두 희망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

제 8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두 번째 저명연주가시리즈 무대가 열린 지난 29일 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청색의 고운 빛깔로 한복 선을 살린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는 언니 정명화 씨와의 협연(사진)에 앞서 가슴 따뜻해지는 말로 관객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올해 대관령국제음악제의 테마는 '일루미네이션-빛이 되어'.이번 축제의 공동 예술감독이자 7년 만에 한 무대에 오른 정 자매의 협연곡은 브람스 '피아노 3중주 1번 B장조'.우아하고 부드러운 장조 선율로 시작한 1악장 알레그로 콜 브리오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의 말처럼 따뜻한 한 줄기 빛이 되어 콘서트홀을 감쌌다.

첼리스트 정명화 씨는 차분하고 노련한 솜씨로 2악장 스케르초를 긴장감 있고도 고풍스럽게 끌고 갔다. 가끔 동생 경화 씨와 눈을 맞추기도 하고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의 화음이 맞아들어갈 때마다 살며시 미소를 짓기도 했다.

피아노와 현악기는 끌고 당기면서 친밀하게 대화를 나눴다. 세 악기의 화음으로 시작한 3악장 아다지오는 정명화 씨의 첼로가 내는 깊은 소리로 하이라이트를 만들었고 마지막 4악장 알레그로에서 화음을 폭발시켰다.

손가락 부상으로 한동안 무대에 서지 못했던 정경화 씨는 이따금 하늘을 지그시 바라보는 등 악장이 진행될수록 표정도 다양해졌다. 바이올린 활을 허공에 휘두를 때는 과거 '암사자'란 별명으로 불리던 때를 연상하게 했다. 악장 사이마다 관객들을 향해 '감사합니다'라며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하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직후에는 객석을 향해 두 손으로 크게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기도 했다. 지난 인터뷰 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내 연주 레코딩을 들으며 '그때 내가 이렇게나 했었군' 하며 까칠했던 스스로를 보듬었다"고 한 그의 말이 떠오르는 무대였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의 드레스를 입은 두 자매는 고운 자태로 '거장의 존재감'을 또 한번 각인시켰다.

대관령국제음악제에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왔다는 홍라희 삼성리움미술관 관장은 이날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도 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