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사주 법인자금 사금고화에 제동
회사자금 대부분 개인용도 끌어써 '지탄'

오리온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13일 총 3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 등으로 담철곤 그룹 회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3개월에 걸친 수사를 일단락했다.

담 회장은 특히 회삿돈으로 고급 외제차를 빌려 자녀 통학용으로 사용하고 고가의 그림을 구입해 서울 성북동 자택의 인테리어용으로 걸어두는 등 심각한 도덕 불감증을 드러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 수사를 두고 '공정 사회'가 국가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쓰는 재벌그룹 오너의 일탈 행위에 다시 한번 법적 철퇴를 가해 재계에 경각심을 심어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00년대 이후 재벌그룹 총수가 회삿돈을 사금고 자금처럼 꺼내 쓴 사실이 드러나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을 비롯한 두산가 형제 등이 검찰 수사로 철퇴를 맞았다.

정 회장은 2000년부터 6년간 현대차 등에서 총 1천34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이 중 797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구속기소돼 파기환송심까지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2008년 법원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사회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며 정 회장의 범행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8천400억원의 사재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05년에는 두산그룹 총수 형제 4명의 부도덕한 회삿돈 관리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박용성ㆍ박용오 전 회장과 박용만 전 부회장,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 등은 1995년부터 10년간 326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유용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돼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들 형제는 특히 빼돌린 돈을 생활비로 나눠쓰거나 사주 일가 대출금의 이자. 세금 등 가족경비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1조5천억원대의 분식회계 범행이 드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비자금을 통한 계열사 부당 지원 등으로 회사에 6천억원대의 손실을 안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도 비자금과 관련한 검찰 수사의 예봉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그룹 총수들이 일반적으로 빼돌린 자금을 그룹 업무와 관련해 쓰다 적발된 것과는 달리 담 회장은 대부분 개인적인 용도로 회삿돈을 끌어다 썼다는 점에서 비난 여지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군사정부 시절 회삿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분식회계를 통한 기만행위로 자금을 끌어들여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등 재벌총수들이 저지른 과거의 악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실제 담 회장은 해외 유명작가의 고가 그림 10점(140억원 상당)을 계열사 법인자금으로 구매해 자택에 장식품으로 걸어두는가 하면 자택 옆에 있는 위장계열사의 서울사무소를 회삿돈 16억여원을 들여 개인 별채로 구조변경해 사용하기도 했다.

또 계열사가 법인자금으로 빌린 람보르기니, 포르쉐 등 고급 외제승용차를 자녀 통학 등에 무상 사용해 회사에 20억원의 손실을 끼치고 지난 10년간 20억원의 회삿돈으로 자택 관리비와 관리원 월급을 지급하는데 쓰는 등 '공사(公私)'를 구별하지 못하는 행태를 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재벌그룹 사주가 법인자금을 사금고화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데 이번 수사의 의미가 있다"며 "이러한 범행에 엄정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마땅하며 이들 오너가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cielo7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