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학자로서 지적 욕구가 여전히 강한 데 놀랐습니다.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64)가 미국 유학 시절 스승이었던 로렌스 클라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91)와 만나 사제지간의 정을 나눈 뒤 이렇게 말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김 총재는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13일(현지시간)필라델피아를 먼저 찾았다. 작년 4월 한국은행 총재에 취임한 뒤 가장 보고 싶었던 스승과 만나기 위해서다. 고령인 탓에 거동이 불편한 노학자는 제자의 초청에 정장을 차려입고 흔쾌히 나들이에 나섰다.

만찬은 필라델피아의 한 식당에서 4시간 동안 계속됐다. 노학자는 한국의 중앙은행 총재가 된 제자에게 일본 지진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급속히 성장하는 중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통일 가능성과 통일 후 한국의 모습도 그의 관심 영역 중 하나였다고 김 총재는 전했다.

계량경제학 모델 분석의 태두이며 1980년 경기예측에 관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노학자는 여전히 실물경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김 총재는 "연세가 있는데도 1주일에 한 번씩 경제 현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지인에게 보낼 정도로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하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클라인 교수는 '이코노믹스'의 저자이자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새뮤얼슨(2009년 타계)의 제자이기도 하다.

김 총재는 클라인 교수의 도움이 있었기에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학자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술회했다.

한국 정부의 자문역을 맡았던 클라인 교수의 추천으로 1974년 펜실베이니아대 유학길에 오른 김 총재는 클라인 교수가 가르치는 계량경제학 과목에서 A학점을 받으며 스승의 눈에 들었다. 50명 수강생 중 A학점을 받은 학생은 3명에 불과했다.

이후 김 총재는 클라인 교수가 설립한 와튼계량경제연구소(WEFA)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1979년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경제적 어려움 없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당시 모형 연구를 위해 김 총재는 새벽 4시까지 연구실에 남아 컴퓨터 전산작업을 할 때가 비일비재했다. 김 총재가 아직까지 '일벌레'로 불리는 데는 학창시절의 이런 습관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클라인 교수는 김 총재의 초청으로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이 어려워지자 제자인 김 총재가 옛 은사를 찾은 것이다.

은사를 찾아뵌 기쁨을 감추지 못한 김 총재는 "옛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날 만찬에는 김 총재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였던 마이클 왁터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도 참석했다.

필라델피아=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