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1988년 큰 산불이 났었다. 필자가 10년 전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도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대화재(大火災)는 그해 4월께 번개로 인해 자연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대화재 초기에 공원 측은 '타도록 놔두는 정책(Let it burn policy)'에 따라 불을 진화하지 않기로 했는데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는 상황에다 거센 바람까지 불어와 하루 10㎞ 이상의 속도로 불이 무섭게 번지며 악화일로를 걸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과학자와 공원 관리자 및 정책 담당자 사이에는 불을 꺼야 하는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결국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 2만5000여명의 소방관과 군인,수백 대의 헬리콥터가 동원됐고 1억2000만달러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정작 불길은 약 5000㎢를 태운 후 '눈'이라는 자연현상에 의해 11월 중순에 완전히 진화됐다.

발화와 진화가 모두 자연적이었던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대화재는 생태계의 재생이란 측면에서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시 공원에는 약 250~300년에 걸쳐 울창한 숲을 이루는 라지폴 파인이라는 나무가 많았는데 고령화된 나무는 겨울철에 죽거나 병충해를 확산시키는 원인이었다. 1988년의 대화재가 1700년대 이후 최대의 산불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300년 주기로 자연적으로 큰 산불이 발생한 셈이다. 산불은 오래된 라지폴 파인을 태워 척박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병충해도 예방해 많은 초목이 새롭게 자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수백년 동안 쌓인 낙엽에 덮여 미처 올라오지 못하던 새로운 싹을 올라오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처럼 기업에도 변화와 혁신의 산불이 필요하다. 선진화된 기업으로 가기 위해서 무엇인가 바꾸어 보자는 구성원들의 생각은 산불처럼 자연적으로 발생하며,점점 번져서 조직의 병들고 말라 죽을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깨끗이 태운다. 문제는 낡고 오래된 규정과 업무절차,사고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지금 산불이 났으니 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조직을 노화시키고 구석구석까지 병충해를 확산시키는 잘못을 범하게 만든다.

선뜻 내키지는 않겠지만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타도록 놔두는 정책'처럼 과거에 얽매인 우리의 의식부터 자연스럽게 태워 없애야 한다. 빈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기와집을 짓기 위해서 초가삼간을 태워야 한다. 초가삼간의 지붕만 걷어내고 기와를 올리면 집 전체가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성원의 의식세계를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선진화된 기업으로의 변화는 어렵다.

옛날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없고 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의식을 가질 때만이 선진화의 새싹을 솟아오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전도봉 < 한전KDN 사장 ceo@kd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