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반발에 밀려 20년만의 대수술 퇴색

지난해 8월19일 중장기 대입선진화 연구회가 2014학년도 수능체계 개편안을 내놓았을 때는 `20년 만의 대수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복수 시행과 수준별 시험, 탐구영역 과목 통폐합 등 획기적인 변화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1994학년도에 처음 도입된 수능이 여러 차례 변화를 겪기는 했지만, 시험체계 자체를 확 뜯어고치려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는 26일 최종 확정안 발표를 앞둔 2014학년도 수능시험 개편안은 애초 개편시안에 있던 내용이 상당 부분 수정됨으로써 현행 체제에 가깝게 원점으로 되돌아간 대목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말이 많았던 탐구영역에서는 `특정 교과목을 죽인다'는 교사·전공학자들의 반발에다 `국영수 편중으로 몰아간다'는 비판을 견디지 못해 과목 통폐합안이 사실상 백지화되고 수험생 부담 경감 차원에서 선택과목 수만 4과목에서 2과목으로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존치 여부를 논의했던 제2외국어·한문도 해당 교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손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15일 간격으로 연 2회 치르겠다는 복수 시행방안도 사교육 유발 등의 우려가 제기되자 시행시기를 늦추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애초 개편시안에서 `온전히 살아남은' 부분은 공통 기본과목인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을 국어·영어·수학으로 바꾸고 A형(현행보다 쉬운 수준)과 B형(현행 난이도)으로 나눠 수준별 시험을 보게 한다는 방안뿐일 것으로 보인다.

◇선택과목 수만 줄여 = 개편시안은 사회탐구 11개 과목을 6개로 묶어 통폐합하고, 과학탐구도 8개 과목을 4개로 줄여 이 가운데 딱 한 과목만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선택과목의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수험생들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통폐합안의 목적이었다.

이렇게 되면 사회탐구는 지리(한국지리, 세계지리), 일반사회(법과 정치, 사회·문화), 한국사, 세계사(세계사, 동아시아사), 경제, 윤리(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로 통폐합된다.

과학탐구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의 Ⅰ·Ⅱ를 한데 묶게 된다.

그러나 이런 통폐합안은 개편시안 발표 직후부터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사회·지리과 교사들은 "수능에서 배제되는 과목은 교육과정 운영의 파행이 불 보듯 뻔하다"며 목청을 높였고 교원단체들도 이에 동조했다.

여기다 사회탐구에서는 지리, 일반사회처럼 통합된 과목이 있는가 하면 경제 같이 그냥 단일 과목으로 남는 경우도 있어 특정과목 쏠림이나 선택의 왜곡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 교과부는 지난해 9월 공청회 때 과목을 통합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로 2과목을 선택하도록 하는 제2안을 들고 나왔고 결국 그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제2외국어 폐지도 `없던 일' = 제2외국어·한문의 존치 여부를 놓고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연구진 시안에서는 아예 폐지하는 1안과 현행대로 놔두자는 2안을 선택하도록 의견을 수렴했다.

제2외국어의 존치 여부가 거론된 것은 점수를 따기 쉽다는 이유로 일선 학교에서 거의 가르치지 않는 아랍어에 수험생이 몰리고 등급 블랭크가 생기는 등 부작용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대입 반영 비율이 다른 영역에 비해 현저히 낮고 읽기 중심의 수능으로는 실질적인 제2외국어 교육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제2외국어 역시 해당 교사들이 수능에서 들어내면 과목 자체가 존폐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다며 반발했다.

결국, 제2외국어도 공신력 있는 공인시험이 마련돼 수능을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다는 존치안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준별 시험이 개편의 핵심 = 연 2회 복수시행 방안은 수험생들에게 단 한 번의 기회만 주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착안한 것이다.

보름 정도 시간을 주면 1차 시험에서 컨디션이 나빴던 수험생도 회복할 여유가 있을 것으로 보고 15일 간격을 정했다.

그러나 1차와 2차 시험 사이에 `보름 속성 족집게 과외' 등의 사교육이 성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사방에서 튀어나왔고, 두 번의 시험이 결과적으로 수험생들에게 두 배의 부담을 가중하는 꼴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만만찮았다.

개편 시안 중에서 그나마 이견이 없었던 대목은 수준별 시험이다.

응시생의 학력 수준이나 지망학과·전공에 따라 난이도를 달리한 시험을 치르게 하면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방안이다.

예컨대 인문사회계열을 지망하는 학생은 국어 B형과 수학 A형, 영어 A 또는 B형을 보고, 이공계 지원자는 국어 A형, 수학 B형, 영어 A 또는 B형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B형을 최대 2개로 제한하고 국어와 수학을 동시에 B형으로 치르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상위권이라도 과도한 부담을 떠안지 않게끔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그러나 수능이 늘 난이도 조절과 이에 따른 선택 유·불리 문제로 시끄러웠다는 점에서 수준별 시험 역시 적정 난이도 유지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옥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