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사막고속도로(암만~아카바) 주위에는 척박한 광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광야를 따라 여기저기 거대한 파이프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눈에 띈다. 광야에 물을 끌어와 농토로 바꾸려는 수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공사 구간은 요르단 종단과 거의 맞먹는 370㎞에 달한다. 이 공사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중동의 기적을 일군 한국 건설업체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은 현지 기업이 진행하고 있다.

요르단에서 한국 기업은 유명하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굴러다니는 승용차의 30%가량이 한국산이다. 요르단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요르단에서 사용 중인 휴대폰의 절반,위성 셋톱박스의 80~90%가 한국산이다. 암만 곳곳의 대형 건물 전면엔 한국 대기업의 광고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지만 관광 등 서비스업으로 먹고 사는 이 나라 국민들은 동양인을 보면 '한국인이냐'고 물어 올 정도다. 일본인못지 않은 위상이다.

척박한 땅에서 농업과 목축업으로 살아가며 1부4처제,남존여비 사상이 그대로 남아있는 요르단에서 부는 '한류'는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바꿔놓았다. 이곳에서 사업을 하는 한 한국 기업인은 "사막의 유목민 베두인족은 배타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데,한국 사람이라면 경계를 다소 늦추는 편"이라며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가 한국인에 대한 신뢰로 확대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대기업들은 광야 한 복판에 각종 공장과 발전소 등을 짓느라 여념이 없다.

한국 기업에서 촉발된 한류는 과학기술로도 확대될 조짐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대우건설 컨소시엄은 지난 23일 요르단 북부 이르비드에서 요르단원자력연구센터 기공식을 가졌다. 상용 원전의 사전 연구시설이어서 수주금액이 크지 않지만,의미는 적지 않다. 요르단은 향후 30년간 20조여원에 달하는 상용원전 3기를 지을 예정이다.

연구로에서 기술적 신뢰를 쌓아간다면 요르단 상용원전 수주가 의외로 빨라질 수도 있다. 한국은 이미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상용 원전 수출 물꼬를 튼 상황이다. 요르단에 부는 한류 바람이 한국 원전의 중동 수출을 앞당기는 훈풍이 되길 기대해본다.

암만/이해성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