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통해 확정될 글로벌 금융규제 개혁안 준비 과정에서 한국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까지로 예정된 금융규제안 마련 시한을 서울 G20 정상회의로 앞당긴 것이 대표적이다.

작년 9월 미국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은 금융규제안 확정시기를 올해 연말까지로 정했으나 한국의 집요한 설득과 노력에 의해 서울 정상회의 성과물로 남게 됐다.

우리나라는 다음번 G20 정상의 모임인 프랑스 정상회의가 내년 하반기에 열리기 때문에 연말에 금융규제안을 마련할 경우 논의의 탄력을 잃어 자칫 재무장관 회의 등을 통해 어렵사리 도출한 결과물이 묻혀버릴 우려가 적지 않다고 설파했다.

더구나 각국의 금융환경이 상이한 상황에서 금융규제의 수준을 대폭 강화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던 만큼 서울 정상회의에 맞춰 규제안을 만들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G20 준비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금융위, 금융감독원 등 금융규제 안건을 담당한 유관 기관들이 금융안정위원회(FSB)나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를 상대로 논의의 속도를 내줄 것을 수차례 주문했다.

또 자국의 피해를 우려해 금융규제안에 소극적이었던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을 방문해 합의 도출에 협력해줄 것을 당부하고, FSB 의장인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를 설득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당초 9월 싱가포르 회의가 마지막이었던 BCBS 회의가 10월에 한국에서 한 번 더 개최된 것도 우리나라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한국은 서울 정상회의에서 금융규제안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선 최종 정리.점검과 입장 조율을 위한 추가 회의가 필요하다고 요청해 예정에 없던 서울 BCBS 회의가 개최된 것이다.

FSB가 이번 정상회의 이후 거시건전성 감독수단 마련, 신흥국 관점의 금융규제 개혁을 새로운 개혁과제로 논의키로 한 것도 한국의 주장을 대폭 수용했기 때문이다.

거시건전성 감독 의제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도출한 개별 은행에 대한 자본 및 유동성 규제라는 미시적 접근법 외에 부동산, 물가 등 거시 변수도 금융 감독을 위한 지표로 삼아야 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을 논의하자는 취지에서 제기됐다.

또 신흥국 관점의 금융규제 개혁 논의란 글로벌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금융규제안이 주로 선진국 관점에서 논의돼온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본유출입 완화와 같은 신흥국 입장에서 절실한 과제도 공식 의제로 삼자는 것이다.

FSB는 향후 이 두 의제 논의를 심화시키기 위한 실무그룹을 만들 예정이며,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작년 3월에야 BCBS 회원으로 가입했고, 금융규제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회의에 참석해 처음에는 조금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금융규제 준수자에서 제정자 역할에 동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처음에는 서울 정상회의 때까지 규제안을 마련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였다"며 "한국의 열성적인 설득작업과 함께 G20 의장국인 한국에 대한 각국의 배려 덕분에 험난한 산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