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아닌 선택의 문제
30대 초반 여성 10명중 3명이 미혼..'미혼대국'
여성단체 '언니네트워크' "결혼 유일한 길 아냐"


"결혼 안 할 수도 있죠.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잘 나가는 시중은행에 다니는 '골드미스' 김모(35)씨는 다른 사람들의 결혼생활 얘기를 들으면서 결혼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씨를 비롯한 상당수 30대 여성들에게 이제 결혼이란 관문은 당연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아니라,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의 문제가 되고 있다.

김씨는 결혼을 주저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결혼할 만한 마땅한 대상이 없다"면서 "맘에 들지 않는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그런지 몇 년 전부터 직장이나 주변 친척 중에는 나이 서른이 넘은 '괜찮은' 미혼여성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카드회사 남자직원 이재영(36)씨는 "주위를 보면 좋은 대학 나와 돈도 잘 벌면서 결혼하지 않는 30대 여성들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이씨는 "하지만 정작 이들 30대 여성들에게 소개해줄 만한 '괜찮은' 남자는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갈수록 높아지는 30대 여성 미혼율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은 우리나라 30대 여성의 수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통계청 통계개발원에 따르면 불과 10년 전인 2000년 25∼29세 여성 10명 중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4명꼴이었다.

하지만 5년 뒤인 2005년엔 10명 중 6명꼴로 크게 늘어났다.

30대의 미혼율 증가세는 더 두드러져 같은 기간 거의 2배로 높아졌다.

30∼34세는 10.5%에서 19.0%로, 35∼39세는 4.1%에서 7.6%로 뛰었다.

2005년 이후의 통계는 공식 자료가 없지만 2005년 인구 센서스 자료와 매년 집계되는 연령별 혼인 신고건수를 활용하면 대략적인 수치는 추정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2009년 말 기준 미혼율을 추산하면 25∼29세는 70.2%, 30∼34세는 31.3%, 35∼39세는 10.8%로 산출된다.

30대 초반 여성 10명 중 3명, 30대 후반 여성 10명 중 1명은 결혼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에서 미혼율 증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현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두섭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인구학회 이사장)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한국 사회에서 큰 전기를 이루는 시기"라며 "그 이후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증대, 경기 침체 등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혼인이나 출산을 늦추는 현상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기에 양성평등 같은 서구적 가치관이 확산하면서 혼인을 특정한 시기에 해야 한다는 관념이 약화했고, 결혼하지 않아도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도 강화됐다"고 덧붙였다.

미혼(未婚)이란 말이 '혼인을 전제로 한 미완결 상태'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며 이를 가치 중립적인 '비혼(非婚)'으로 대체하자는 여성단체도 생겨났다.

비혼운동을 벌이고 있는 '언니네트워크'는 결혼제도가 잘못됐으니 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다.

언니네트워크의 정현희 운영위원은 "결혼을 통한 가정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반대하고 출산 수단으로서 결혼을 장려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태환 전 서울대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 사회에서 보편혼(universal marriage.누구나 혼인을 한다는 것) 규범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 저출산의 숨은 주범
30대 여성들의 미혼율이 높아지면서 저출산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흔히 저출산의 원인으로 기혼여성들의 낮은 출산율이 지적되고 있지만 실제로 최근 들어선 여성의 미혼 현상이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연합뉴스가 통계청 통계개발원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15세 이상 모든 기혼 여성의 평균 출생 자녀 수는 2000년 2.54명, 2005년 2.43명으로 0.11명 줄었다.

이 기간 미혼 여성까지 포함한 15세 이상 전체 여성의 평균 출생자녀 수는 1.90명에서 1.81명으로 0.09명 줄어드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를 젊은 세대, 즉 주로 출산을 하는 25∼34세 연령대 여성으로 국한하면 기혼여성의 평균 출생자녀 수 감소 폭은 0.13명(1.47→1.33명)인 데 비해 여성 전체의 출생자녀 수 감소 폭은 0.26명(1.10→0.83명)으로 2배에 달했다.

통계개발원 최은영 사무관은 "젊은 연령대에서는 미혼, 또는 자발적 비혼이 출산율 감소에 미치는 영향력이 기혼여성의 출생아 수 감소보다 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가까운 일본 역시 출산율 저하의 주원인으로 미혼율의 상승이 꼽히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기혼여성을 상대로 한 출산율 제고 정책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통계개발원은 또 어떤 사회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가임 기간[15∼49세]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명이라고 가정할 경우 주 출산 연령층인 20∼39세 여성의 미혼율이 10% 증가하면 기혼여성의 출산율이 그대로 유지돼도 합계출산율은 1.8명으로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 미혼여성 증가 막지 못할 대세
30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인 원인은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가 우월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엔 여성의 지위나 정체성이 '누구의 아내'란 것에 따라 정해졌고 결혼은 당위였다.

그러나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면서 소득도 급증했다.

이제는 여성도 남성과 대등하게 의사, 변호사, 정치인, 교수 등으로 사회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됐고, 이는 여성이 결혼제도에 기대지 않고도 사회적.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됐다.

간판 대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이 여성 전문직 공채를 실시하면서 한국 대기업에 대규모 여성 공채 시대를 연 게 1993년이다.

채 20년이 안 된 셈인데 이 시기를 전후해 여성들은 봇물 터지듯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또 다른 원인은 사회문화적인 데에 있다.

여성이 자신보다 사회적 또는 경제적 지위가 높은 남성과 결혼하려는 이른바 '앙혼(仰婚)' 관습이다.

문제는 여성이 고학력, 고소득화하면서 눈높이는 높아진 반면, 이들이 차지한 만큼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은 줄었다는 것이다.

여성들로선 앙혼을 하려 해도 그럴 만한 상대가 없어진 셈이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김씨는 "의대를 졸업한 남녀 비율이 예전엔 8 대 2였다면 지금은 6 대 4가 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현실의 여자들은 여전히 조건이 나은 남자를 찾는 '상향지원' 내지는 비슷한 조건의 남자와 만나겠다는 마인드를 들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의 저자 윤단우(36)씨는 "지금의 30대 여성은 아마도 결혼파업의 첫 세대가 되고, 그들 중 다수는 결국 평생을 홀로 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이상적인 결혼상(相)이 뚜렷한데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긴 어렵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도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어 이상적인 상을 포기하면서까지 결혼을 하려 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씨는 또 "앞으로 미혼율 증가는 막지 못할 대세가 될 것"이라며 "우리의 숙제는 이들이 사회적 소수자로 배제되지 않은 채 사회 일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