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현지서 가짜 투자유치설명회…12억 꿀꺽

2008년 1월 말 서울의 한 유명호텔에서 열린 투자유치설명회에 참가한 사업가 김모(52)씨는 자신을 재미사업가라고 소개한 박모(66·여)씨로부터 귀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대만의 투자회사 대표가 인도네시아 모 은행에 맡겨둔 4천만 달러를 투자할 곳을 찾고 있는데 김씨가 이를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김씨에게 대만의 투자회사 대표 장회장이란 사람을 소개했고, 장회장은 직접 인도네시아 은행의 지급보증서를 김씨에게 보여주면서 "돈을 인출하는데 필요한 수수료만 약간 지불하면 4천만 달러를 찾아 당신에게 투자하겠다"고 제의했다.

김씨는 각국 대통령 관저를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고 엄청난 규모의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는 말을 믿고 장회장에게 미화 80만달러(약 9억원)를 건넸다.

사업가 박모씨 역시 이들의 꾀임에 빠져 장회장에게 4억5천500만원을 전달했다.

외화 1천억원을 국내로 들여오는 수수료 명목이었다.

물론 장회장은 이 돈을 박씨에게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장회장과 박씨는 수수료를 챙기고 나서 연락을 끊었다.

투자금이 들어올 날만 학수고대하던 김씨 등은 기다리다 못해 국제변호사를 선임해 장회장과 박씨의 뒤를 캐봤다.

그 결과 장회장이 대만에 설립했다던 투자회사는 껍데기뿐인 유령회사였고 박씨 역시 국제사기꾼이었음이 드러났다.

김씨 등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검토했지만 장회장과 박씨의 행방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모든 재산을 숨겨둔 탓에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돼 소송을 포기해야만 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인에게 피눈물을 짜낸 국제사기단은 또 한번 국내 기업인을 대상으로 범행을 꾸미다가 한국과 대만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번에는 지방자치단체와 해당지역 내 벤처기업인들이 먹잇감이었다.

박씨와 장회장은 지자체 공무원과 벤처 사업가 7명을 대만으로 초청해 투자설명회를 열고 투자유치 MOU(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

성공적으로 사기 투자설명회를 끝낸 박씨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려다 경찰에 붙잡혔으며, 장회장도 대만 현지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박씨는 경찰에서 "나도 장회장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30일 박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장회장 역시 대만 현지에서 구속됐으며, 양국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여죄를 조사 중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kind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