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지방선거가 끝난 3일 새벽 5시.서울시장 선거 개표가 95%를 넘기며 오세훈 후보가 가까스로 승기를 잡아가자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서울과 경기를 이겼으니 진 것은 아니다. '반타작'은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전체 유권자 절반의 표심이 걸린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를 여당 후보가 이겼으니 '참패'는 아니라는 해석이었다.

그 무렵 오세훈 캠프의 한 관계자는 바싹 말라버린 목소리로 "천안함 사태로 투표에 대한 관심이 저조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오판이었다"며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상처뿐인 승리였다는 것이다. 몇 시간 뒤 중앙선관위의 투표 결과 집계가 마감되면서 승부는 여당의 참패,야권의 승리로 결론났다. 한나라당은 초상집 분위기였고 당직자들은 온종일 안절부절못했다.

"대학생들이 투표소에서 30m씩 줄을 섰다고 하더라. 젊은층 공략 왜 안했냐" "대학가를 좀 더 뛰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게 서로 입조심 좀 했어야지" 등 온갖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대 한번도 내주지 않았던 강원과 '텃밭' 경남의 도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확실히 충격이 컸다. 한 당직자는 "믿고 싶지 않다"고 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못 먹어도 최소 (광역)7~8곳"이라고 자신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심지어 "이번에 수도권을 압승하게 되면 세종시와 4대강 사업에 대한 민심의 지지로 알겠다"고 큰소리쳤던 한 유력인사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낙승했으니 이번에도 이길 것으로 낙관했던 것일까.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현 정권에 대한 엄청난 견제 쓰나미가 몰아닥쳤다"고 말했다. 다른 대변인은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초선의 한 비례의원은 "우월주의와 독선, 현 정부에 대한 반감, 천안함 사태로 인한 전쟁 불안감, 국민 눈에 비친 싸우는 정책(세종시 · 4대강 사업) 등 일일이 셀 수도 없지만 가장 큰 것은 선거 결과를 놓고 지나치게 자만한 여권에 대한 심판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김무성 사무총장이 평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떠오른다. "세상 만사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 법인데…."

이준혁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