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진다. 소프트웨어 인력 1만명을 모아라."

1993년 신경영을 선언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한 말이다. 항상 앞날을 내다보며 준비경영을 강조했던 그는 미래경쟁력이 소프트웨어 (SW)에 달려 있다는 것을 예견했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렀지만 결과적으로 이 지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삼성전자가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과 같은 하드웨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면서다. 한때 삼성SDS를 중심으로 대규모로 선발된 인력들은 계열사 전산실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 현재 삼성의 소프트 경쟁력 수준은 이름에 걸맞지 않다는 평이 많다. 휴대폰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최근 '소프트 황제' 애플이 한국시장에 몰고온 돌풍은 삼성의 이런 취약점을 더욱 부각시켰다.

삼성은 늦었지만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자를 필두로 계열사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소프트 인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한국 소프트웨어의 선구자인 강태진 전무를 스카우트한 것도 그 일환이다.

◆"해외 소프트웨어 인력도 데려와라"

요즘 삼성그룹의 인력 채용 홈페이지 '디어 삼성(www.dearsamsung.co.kr)'의 단골 메뉴는 단연 소프트웨어다. 삼성전자는 최근 생산기술연구소,미디어솔루션센터(MSC),무선사업부에서 일할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경력직을 뽑는 공고를 냈다. 지난 몇달만 보면 매달 소프트웨어 경력사원을 뽑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도 이공계 박사 인턴십 공고를 내면서 멀티미디어,SW,통신 분야를 가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룹 내 소프트 파워를 모으기 위해 삼성SDS 등 계열사들에도 시선을 돌리고 있다. 삼성은 최근 SDS의 일부 SW 전문인력들을 삼성전자로 스카우트한 데 이어 외부에 의존해온 SW 핵심 기술을 내부화시키기 위한 영입 작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해외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에 부족한 전문 인력을 해외에서 충원하기 위해 별도의 태스크포스(TF)도 만들었다. 삼성 관계자는 "해외 우수 인력을 그룹 차원에서 통합 선발하기 위해 TF를 만들었다"며 "대상자 상당수는 소프트 파워를 확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삼성전자 정도의 수준이라면 소프트웨어 사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인재를 국내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내부적으로 신규 충원할 SW 인력 규모를 3000명으로 잡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 3스크린 플레이 만들어라

"아이팟 같은 워너비(wannabe) 제품을 만들어라."

강 전무를 비롯한 삼성에 몰려들 SW 전문가들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로 이어지는 모든 영역에서 삼성만의 색깔을 담은 감성적 제품을 만들라는 얘기다.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을 만질 때 손맛,작은 소리,다른 화면으로 넘어갈 때의 느낌'까지 소비자들의 감성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고려한 제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제품을 사는 데 이유가 없다. 다만 갖고 싶을 뿐"이라는 새로운 고객의 코드에 맞춰야 한다는 게 삼성의 고민이다. 강 전무도 과거 "소프트웨어는 감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삼성이 '시대를 앞서가는 자유를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을 과감히 데려가는 것도 이 같은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전략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복잡하다. 애플,구글,노키아에 비해 후발주자이다 보니 다양한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하나의 운영체제에 올인하기보다는 기호가 다른 모든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대응할 수 있는 다원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OS인 '바다',구글 안드로이드,마이크로소프트 '윈도폰7' 등을 병행하는 것이다. 앞으로 바다는 범용 휴대폰과 TV,PC를 연결하는 3스크린 플레이의 핵심 플랫폼으로 키우고 안드로이드와 윈도폰7은 고가 스마트폰에 탑재해 나갈 계획이다.

김용준/김태훈 기자 ta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