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인류가 출현 이후 끊임없이 확대 발전해왔다. 이는 이익을 추구하는 인류의 본성에 기인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주요한 발견이나 발명은 교환의 장애물을 극복하고,교환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경제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시장의 세계적 확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추세에 잘 적응해야 국가의 부를 증대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민경제를 기초로 한 경제정책에서 세계경제를 기초로 한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자국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에서 자국의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국 근로자를 고용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기업이 경제에 도움이 됨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제도나 법률을 정비하고 기업의 애로사항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확대는 국경과 국적을 기초로 한 정치와 갈등을 초래하는 일이 많다. 경제적 영역에서는 부를 증대시키고자 하지만,정치적 영역에서는 부를 재분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정치과정은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다. 다수결의 원칙은 다양한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리고 부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보다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을 쉽게 채택하게 한다. 나아가 다수의 부를 약탈해 소수에게 재분배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시장의 확대에 따른 정치와 경제의 갈등은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우리 경제의 성장은 세계적 시장의 확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세계시장의 변화에 따라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아직 국민경제에 기초한 경제규범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 세계적 시장 확대에 적합하게 고쳐야 한다. 투쟁적인 단체행동을 초래한 낡은 노사간의 관행을 개선하고,창의적인 인재를 기를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재정의 범위 내에서 효율적 복지제도를 정비해야 하고,시장에서 성공한 사람을 징벌하는 조세제도를 합리적 수준으로 바꾸어야 한다.

세계 경제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대응이 필요하지만,정치적 갈등이 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올해 초 국회에서 있었던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상임위 통과나 미디어 관련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비롯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종시 논쟁도 결국 부의 창출과 재분배 간의 갈등이다. 이러한 정치적 갈등으로 세계적 시장 확대에 따른 대비를 소홀히 하면 세계적 흐름에 뒤질 수 있다.

이제 우리도 세계시장의 확대에 따라 정치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갈등을 줄일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정치관행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오히려 물리적 충돌로 갈등을 확대시키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치관행에 비춰보면 정치가 스스로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정부의 크기를 줄이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커지면 이를 이용해 이익을 보려는 집단 때문에 재분배를 위한 정치적 갈등이 첨예해진다. 그래서 정치가 경제에 개입하는 부분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쉽지 않겠지만 자신의 가치와 개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유권자들이 늘어날수록 실현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지금 세계적 시장의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사적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에 잘 적응해야 자손들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줄 수 있다. 이제 정치인들도 세계경제의 흐름을 이해하는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부를 재분배하는 데 힘을 쓰기보다 무엇이 이 시대의 부를 창출하는 길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부의 창출 없이는 부의 재분배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기화 <전남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