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시장 내년부터 커진다
내년부터 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급격하게 커져 2020년에는 최대 200조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내년에 국회를 통과하면 신설 기업들은 퇴직연금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등 퇴직연금 활성화를 위한 각종 조치가 속속 도입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부진했던 퇴직연금 시장이 활성화되면 주식에 장기 투자할 수 있는 '큰손'이 새로 등장하는 것이어서 국내 증시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0년은 퇴직연금 활성화 원년

3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4회 미래에셋퇴직연금 국제세미나'에서 신세라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제도 도입 4년을 맞은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적립금 규모가 9조1047억원"이라며 "한국의 급속한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성장이 매우 느린 편"이라고 분석했다. 2005년 퇴직연금 도입 당시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2010년 69조원에 달할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기업퇴직연금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퇴직연금 시장 성장이 이처럼 더딘 이유는 무엇보다 '제도에 대한 관심 부족'(30.5%)과 '제도 도입에 따른 비용 부담'(24.6%) 때문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란 분석이다. 성주호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년에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퇴직연금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개정안은 △자영업자의 퇴직연금 가입 허용 △신설 기업의 퇴직연금 자동 가입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 동시 가입 허용 등 퇴직연금 가입을 촉진하는 내용을 다수 담고 있다. 아울러 2011년부터는 현행 퇴직금 제도가 폐지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기존의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전환해야 한다.

◆내년 가입자 수 233만명으로 늘 전망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국내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빠르게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2010년 이후 퇴직연금시장 규모를 추정한 결과,올해 163만명이던 퇴직연금 가입자 수는 내년에는 233만명으로 껑충 뛴 뒤 2020년까지 연평균 10.1%씩 증가할 것이란 결과가 나왔다.

퇴직연금시장 내년부터 커진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도 올해는 12조원에 불과하지만 내년에는 21조원으로 불어나고 2020년에는 149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신 연구원은 "향후 10년간의 연평균 임금 상승률과 퇴직연금 가입률 등을 보수적으로 가정하고 계산한 전망치"라며 "경우에 따라 최대 200조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퇴직연금이 이처럼 늘어도 경제 규모 대비 비중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 될 전망이다. 2007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퇴직연금 비중은 미국이 74.3%,일본은 20.0%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75.5%다. 반면 한국은 2020년이 돼도 이 비중이 10.2%에 불과하다. 신 연구원은 "퇴직연금 시장이 2020년 이후에도 꾸준히 커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장기 투자 자금 증시 유입 기대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시장 팽창으로 국내 증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액 중 상당수가 증시로 흘러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 법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액 중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비중은 평균 35%다. 내년의 퇴직연금 적립액 증가분 9조원 중 3조1500억원이 증시에 추가로 유입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엄돈영 우리투자증권 퇴직연금컨설팅팀 차장은 "2020년의 퇴직연금 규모를 149조원으로 가정하면 약 52조원이 주식 시장에 투자될 수 있다"며 "현재 국민연금 주식투자액(약 23억원)의 두배가 넘는 규모"라고 말했다. 엄 차장은 "선진국의 경우 퇴직연금 중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비중에 대한 제한이 없다"며 "한국도 향후 주식 투자 비중이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손성동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이사는 "퇴직연금은 성격상 장기 투자하는 양질의 자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증시의 변동성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