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10월중순 이후 '담판'할듯..정부 '민감 주시'

고비고비마다 한반도 정세를 흔들며 20여년을 끌어온 북핵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북한이 이른바 '2012년 강성대국' 전략에 따라 미국과 담판을 시도하겠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지향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도 '대화와 제재'의 병행과 6자회담의 틀내라는 여러 조건을 제시하면서도 조만간 북한과의 양자 대화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특히 양측은 지난 1월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지속적인 '탐색과 분석' 과정을 거쳐 비로소 '대화의 문' 앞에 선 만큼 '본질적 전환'을 도출하기 위한 새로운 협상의 시작이 가시화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비핵화'를 최우선 가치로 설정한 한국 정부의 선택이 장차 북핵 논의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요인이 될지, 아니면 주도권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할지 외교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바마 정부를 상대로 한 북한의 전술은 이미 예견돼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12년 강성대국 전략이 핵무기 보유국을 지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핵무기 포기를 대가로 체제안전과 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것인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어쨌든 북한은 지난 1월과 2월 평양을 방문했던 미국의 전직관료와 북한 문제전문가들을 상대로 오바마 정부 출범을 계기로 비핵화 3-4단계를 상정한 '과감한 딜'을 하자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 속에는 핵무기 포기의 대가로 대북 적대시 정책의 종료와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거, 한미동맹의 종료 등 궁극적인 목표에 해당할 만한 큰 카드가 망라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며 이는 갓 출범한 정부가 단기간에 결정내릴 사안도 아니었다.

게다가 오바마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금융위기와 국내산업 구조조정, 이라크 및 아프간 전쟁 등 다른 현안에 매달리느라 북핵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에 북한은 '미국의 외면'을 비난하며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응수했고 미국은 그런 북한에 대해 유엔을 통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주도하는 것으로 맞섰다.

특히 북한은 2차 핵실험을 통해 그들이 지향하는 '공포의 핵 억지력'을 확보했음을 공공연히 천명했다.

나아가 이달초 북한은 신선호 유엔주재 자국대표 명의로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전달한 편지를 통해 '우라늄농축 시험 성공'이라는 비장의 카드까지 내밀었다.

미국으로 하여금 '언제까지 대화를 외면할 셈이냐'고 윽박지른 셈이다.

한때 북한의 도발에 '상응하는 대가'를 강조하며 제재쪽으로 기울던 미국의 기류도 점차 국무부 동아태 라인이 정비되고 북한이 7월 이후 도발을 자제하며 평화공세를 전개하면서 '오바마 색채'를 회복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적대국 지도자들과도 만나겠다'는 입장을 공개 천명해온 만큼 대화를 하자는 북한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의 고위 소식통은 14일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제의를 공개적으로 하고 있는 마당에 일단 만나봐야하는게 아니냐는 기류가 미국내에 팽배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하기 전에 ▲6자회담 관련국들과 협의를 거치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추가 양보는 하지 않으며 ▲6자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미국과 북한은 조만간 대화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 채널을 통해 양측은 현재 협상대표의 급과 장소, 일시 등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미국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나서며 장소는 평양(보즈워스 대표가 방북할 경우)이나 제네바, 쿠알라룸푸르, 베이징(北京) 등이 거론되며 미국의 한 도시가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측 대표는 '6자회담 수석대표보다 높은 급'이 나올 경우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될 수 있지만 이는 더 두고봐야할 사안이라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한다.

대화 시점으로는 빠르면 9월 말도 거론되지만 양측의 실무적 의견교환 등을 감안할 때 10월 중순이후가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한국 정부 일각에서는 11월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어떤 성격을 부여하든 북.미 대화가 성사될 경우 이는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북한과 미국이 처음으로 대좌하는 자리인 만큼 외교적 무게감은 매우 크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특히 북한이 '우라늄 카드'까지 꺼낸 상황이어서 북한과 미국간 본격적인 담판이 시작될 것이며 한번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추가 회동으로 이어지면서 90년대 초반 연출됐던 '고위급 회담'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핵 현안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북한(강성대국 전략)이나 미국(핵없는 세계 구현) 모두 과감하고 신속한 협상을 원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일단 첫 회동에서 어떤 입장을 개진하느냐에 따라 협상의 향후 진행방향이 가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 정부도 북.미 대화 기류를 민감하게 보고 있다.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대화라는 차원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환영입장까지 내긴 했지만 향후 전개방향을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내부에서 북한의 '통미봉남(미국과만 대화하고 한국을 배제한다)' 전술에 말려들어 결국 한국의 주도권 상실이 우려된다는 여론이 일면서 정부의 마음을 급하게 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현 정부 출범이후 한.미 양국이 철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공동 대응이 절실하다며 조만간 열릴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그러나 북한(또는 북한 핵)을 바라보는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시간개념이 다른 상황에서 정부가 얼마나 '효율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오히려 북.미 협상이 본격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국내 정치적 변수에 사로잡혀 전체국면에서 소외되거나 정부 내부의 소통이 원활해지지 못하면서 불협화음이 나올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아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