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삶과 정치역정이 심심찮게 비교가 됐다.

가난,독학,성공한 변호사,정치인 변신,잇단 낙선,드라마틱한 대통령 당선….한국과 미국의 두 제16대 대통령은 140여년이란 시차를 두고 이렇게 비슷한 궤적을 걸었다.

링컨 전 대통령이 콤플렉스가 운명이라고 할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농삿일,점원,창고지기,뱃사공,막노동으로 어릴 때부터 '바닥 인생'을 경험하고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링컨은 일리노이주에서 성공한 변호사가 됐다. 이혼에서부터 채권 · 채무,철도산업 관련 등 다양한 송사를 맡아 처리했고 유명세를 탔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에 진출했지만 잇단 상원의원 낙선,부통령 후보 경선 패배 등 '쓴잔'을 숱하게 마셨다. 공직 경력은 주의원과 하원의원 한번이 전부였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후보들에 뒤처져 있었다. 때문에 링컨이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국민은 별로 없었다. 정치적 기반도 취약했다. 그럼에도 청중을 매료시킨 빼어난 연설과 미합중국 사수론 · 노예해방론이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면서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도 굴곡의 역정을 보냈다는 것은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다. 상고 졸업 후 사법고시 합격,부산의 잘나가는 변호사,정치인 변신 후 숱한 좌절….그리고 뛰어난 언변이 그를 대통령이 되게 한 자산이 됐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노 전 대통령은 링컨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대선 주자 시절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펴냈을 정도다. "나의 관점을 링컨의 삶에 투사한 것"이라고 했다. 링컨을 대통령의 '롤 모델'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판박이 인생'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였다. 노 전 대통령이 링컨을 롤 모델로 했지만 국정운영 과정에서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링컨의 포용 인사를 흉내 좀 내보려고 했는데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고 토로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국회부의장은 "결과적으로 링컨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국민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던 것 같다"고 한계를 겸허히 인정했다.

대통령 이후 두 사람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린다. 한 사람은 비록 총탄에 맞아 비명횡사했지만 위기의 미국을 구해내고 발전의 터전을 닦은 대통령으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한국 역대 대통령 중 세 번째로 검찰에 소환돼 법정에 설 운명에 처해 있다. 링컨의 가장 큰 덕목으로 정직이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무현이 만난 링컨'서문에선 낮은 사람,겸손한 권력을 약속했다.

링컨 대통령을 존경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에 정직하게 응해야 할 것이다. 행여나 방어에 치중하며 '꼼수'를 부린다면 그가 청산하고자 했던 '정의가 패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