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 분쟁이 20일 러시아의 가스 공급 재개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2주 넘게 지속된 이번 마찰은 양국뿐 아니라 이들의 협상을 조바심내며 지켜봐야 했던 유럽연합(EU) 모두에게 큰 생채기를 남겼다.

러시아는 이번 분쟁에서 겉으로 보면 승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패자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가즈프롬에 12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하지만 그동안 유럽 최대 가스 수출국으로서의 쌓아온 신뢰가 무너진 것에 비견할 바가 못 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와 유가 하락으로 올해 10년 만에 재정 적자를 예상하는 러시아로서는 이번 가스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가스를 무기로 또다시 서방을 위협한 꼴이 됐다.

지난해 8월 러시아와 그루지야와의 전쟁을 잊지 못하는 서방은 이번에 러시아가 보여준 행동에 적지않은 실망과 분노를 표출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사태로 러시아가 EU에 대한 '신뢰받는' 가스공급국이란 지위를 스스로 저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루지야와 전쟁으로 서방과 껄끄러워진 관계가 회복 기미를 보일 즈음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러시아는 앞으로 EU와의 관계 진전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더욱 처지가 딱해진 것은 우크라이나다.

러시아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끝까지 버텨 가스 가격을 조금 낮출 수는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이 입은 피해는 형언하기 어렵다.

러시아가 지난 1일 가스 공급을 중단하자 1년간 사용할 비축분이 있다면서 자신만만했지만 며칠 뒤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가스 부족사태가 발생했다.

현실적인 문제는 가스 협정에 서명은 했으나 금융위기로 재정이 바닥난 우크라이나가 이 돈을 얼마 동안 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최대 야당인 지역당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재는 "250달러(1천㎥당) 이상은 경제 붕괴를 의미한다.

"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올 1ㆍ4분기는 유럽시장 가격(약 450달러)보다 20% 저렴한 가격에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기로 했다.

금융위기와 함께 지난해 9월 연정 붕괴 이후 가뜩이나 정국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야권이 이번 협상을 `실패작'으로 간주, 정부를 압박한다면 큰 사회적 혼란에 직면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는 게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또 우크라이나 역시 이번 사태로 유럽 국가들의 신뢰를 상실, EU 가입의 꿈은 더 멀어지게 됐다.

마지막으로 EU는 지난 2006년 1월에 이어 또다시 양국 간 분쟁의 희생양이 됐다.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 등 발칸 국가와 동유럽 국가에서는 수백만 명이 추위에 떨어야 했고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 수억 달러 상당의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

그런가 하면 분쟁 초기 적극적으로 양측을 중재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있었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러시아의 `에너지 우산'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스 공급선 다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