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동 규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장>

쓰레기 쌓여도 청소 안하는 사이버 세상

산업활성화·자율규제 '균형시각' 필요

인터넷은 1990년대 중반부터 대중화되기 되기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가히 충격적이었다. 컴퓨터와 컴퓨터가 그물망처럼 연결돼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인 인터넷은 그동안 인류가 축적해온 모든 정보를 사이버공간에 빨아 들이면서 순식간에 세상의 정보창고가 됐다.

인터넷에 접속해 한 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전 세계를 빛의 속도로 이동하며 정보를 가져오는 편리함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지구촌 반대에 있는 미국 대학 도서관의 자료뿐만 아니라 방금 마감된 전 세계의 주식시세도 즉각적으로 확인 가능했다. 또한 지금까지는 주로 정보나 뉴스의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늘 소비자에게만 머물러 있던 대중이 개방·참여·공유의 정신을 앞세운 인터넷공간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기만 하면 어떠한 여과장치도 없이 바로 기사가 되는 세상에 환호했다. 참으로 수평적이고 열린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4대 발명품에 이어 5대 발명품으로 지칭되는 인터넷의 축복은 거기까지였다. 사이버공간에는 온갖 음란물들이 넘쳐나기 시작하며 성인보다는 오히려 컴퓨터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최진실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사이버테러의 문제 역시 지난 10여년간 수많은 사람을 괴롭혀온,우리가 익히 알고 지적해왔던 병폐의 하나였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막혀있던 소통시스템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듯 네티즌들은 익명이든 실명이든 정치인이나 연예인뿐만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의 목을 죄기 시작했다. 개똥녀 사건처럼 말이다.

이쯤 되면 인터넷은 더 이상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열린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를 괴롭히고 사회적 규범을 무너뜨리는,경계와 감시의 대상인 것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최씨는 일기장에 '섭섭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고통을 토로했다. 실제로 그녀가 섭섭해 했던 세상에는 인터넷이 매개체가 돼 보호돼야 할 개인의 사적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고 악의적인 거짓 루머도 유포돼 평생 치유받을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인터넷의 심각한 오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인류는 인터넷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세상의 온갖 뉴스가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기업이나 정부의 결제시스템도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염도를 종합적으로 측정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인터넷상의 포르노가 전 세계적 문제점으로 불거지자 그 해결책으로 제안됐던 것이 자율규제안이었다. 그러나 자율규제 시스템은 그야말로 인터넷 운영자와 콘텐츠 생산자,그리고 이용자가 삼위일체가 되어 규제시스템의 규약을 지켜야만 가능하기에 한계점만 노정했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대안은 법률에 근거한 규제정책밖에 없다는 얘기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사이버모욕죄 같은 법률 제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전기통신망법 등 10여개가 넘는 인터넷 관련 법률이 만들어져 있어,또다른 법률을 만들 경우 옥상옥이 되어 자칫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좀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인터넷은 우리에게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IT산업의 핵심분야이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규제도 중요하지만,산업적인 진흥을 촉진할 수 있는 전략이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어느누구도 이를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국회에서는 한건주의식 사고에 젖어 엉뚱한 입법안을 남발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규제와 진흥을 같이 적용할 수 있는 종합적인 인터넷법을 만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