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카드채·캐피털채 등

고금리 단기 채권형 상품 인기

장기상품은 '원금보장' ELD 선호

지난해 펀드 열풍을 타고 증권가로 잠시 외도했던 부자들이 은행으로 돌아오고 있다. 국내외 증시에서 미국발 금융 쇼크의 여진이 좀체 가라앉지 않자 확정금리를 주는 은행 상품으로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 것.하지만 장기간 은행에 머물지는 않을 태세다. 시장 상황이 다시 좋아지기를 기다리면서 3개월 이하의 단기 채권형 상품에 돈을 묻어두고 있다. 일단 소나기는 피해보자는 계산이다.

◆단기 안전자산 선호 현상 뚜렷

요즘 프라이빗뱅킹(PB) 고객들의 투자 트렌드는 '짧고,굵고,안전하게'로 요약된다. 고금리를 주는 안전자산에 단기로 돈을 굴리고 있다는 얘기다. 단기 상품 중에서도 특히 카드채,캐피털채,기업어음(CP)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카드채는 카드사들이 발행한 채권으로 3개월물의 금리가 연 6.3% 정도다. 부자 고객들은 주로 카드채 중 금융지주사 산하인 신한카드의 채권을 선호하고 있다. 카드채보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캐피털채도 상한가다. 등급이 낮은 만큼 이자수익이 더 쏠쏠하기 때문이다. 3개월 만기 캐피털 채권의 금리는 연 6% 후반대다.

김현규 하나은행 삼성역 골드클럽 PB팀장은 "카드채와 캐피털채의 금리가 정기예금 금리보다 훨씬 높아 많이 팔리고 있다"며 "특히 신용등급이 A등급 이상인 지주 계열사의 카드채와 캐피털채의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부자 고객들은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도 주목하고 있다. 은행 매입 약정 단서가 붙은 3개월 만기 ABCP의 금리는 현재 연 6.2~6.5%로 정기예금 금리보다 높다. 부자들은 이런 상품에 평균 3억원 이상의 뭉칫돈을 넣어두고 있다.

특정금전신탁(MMT)에도 부자들의 돈이 몰리고 있다. MMT는 은행이 고객의 돈을 금융회사의 발행어음(CP)과 같은 단기 금융 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으로 최저 가입 금액이 1000만원 정도다. 1~3개월 만기 상품의 수익률이 연 6% 내외로 5% 초반대인 머니마켓펀드(MMF)보다 더 많은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하나은행이 판매 중인 ABCP에 투자하는 '빅팟2007 시리즈'(3개월)의 금리는 연 6.3%나 된다. 국민은행이 취급하고 있는 부동산 맞춤 특정금전신탁도 1년에 연 8%의 금리를 주고 있다. 이런 수익성에 힘입어 주요 은행의 MMT 잔액은 매달 1000억원가량씩 늘고 있다. 서명교 신한은행 잠실 PB센터 팀장은 "주가나 금리의 변동성이 심해 고객들이 자금을 MMT 같은 단기 상품에 넣어두고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지수연계예금도 인기

부자들의 발길이 단기 상품에만 몰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당장 필요한 돈이 아니라면 1년 이상의 예금 상품에도 자산의 일부를 투자하고 있다. 특히 주가지수연계예금(ELD)을 눈여겨 보고 있다. ELD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만기까지만 들고 가면 원금을 보장받는 상품이다. 펀드에서 원금을 떼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부자들도 원금 보장의 매력에 주목하고 있는 것.최근에 나온 ELD는 특히 예전에 비해 상품 구조가 훨씬 간단한 게 특징이다.

예컨대 만기 때 코스피지수가 가입 시점 때보다 떨어지지만 않으면 최저 금리를 보장하는 식이다. '1년 후에 지금보다는 오르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가입자들이 늘고 있다는 게 은행 PB들의 전언이다.

은행들은 또 ELD에 가입하는 고객들에게 우대금리를 붙여 연 7%에 가까운 정기예금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500만원을 ELD에 투자하면 500만원을 연 7.0%의 확정금리를 주는 정기예금에 가입시켜 주고 있다. 김현규 팀장은 "ELD는 정기예금과 주식 투자의 장점만을 모은 상품이어서 중도에 해지만 하지 않으면 원금 보장은 물론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PB고객들은 정기예금보다 금리를 좀 더 받을 수 있는 통장식 양도성 예금증서(CD)도 많이 찾고 있다. 통장식 CD는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지만 정기예금보다 금리가 0.1~0.2%포인트 더 높다.

김용구 국민은행 PB사업부 차장은 "현재 1년 만기 CD 금리는 6.8% 내외를 기록하고 있어 당분간 주식시장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고객들이 CD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주가가 바닥이라고 보고 변액연금에 가입하는 부자 고객들도 늘고 있다. 장기 투자 상품인 변액연금은 주식 하락기에 가입해야 이익이기 때문이다. 서명교 팀장은 "변액연금에 장기로 투자하면 펀드보다 수수료를 적게 내도 된다"며 "장기 보유하면 원금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부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