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결지 붕괴됐으나 '인형방' 등 음지서 성업

23일로 `성매매특별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대한 법률)'이 시행된 지 만 4년이 된다.

법 시행 이후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집중되면서 주요 집결지에서 이뤄지던 공공연한 성매매는 크게 줄었다.

법 시행을 계기로 성매매는 범죄이며 인권착취라는 인식도 널리 퍼져 이제는 상식이 됐고, `윤락가', `홍등가'라는 낙인이 찍혔던 옛 성매매 집결지역들도 본격적인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안마시술소, 오피스텔로 위장한 성매매업소, 불법 `휴게텔'과 '스포츠마사지' 등은 성매매특별법이 여전히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매매 집결지는 해체됐지만 성매매 행태는 법 시행 이후 오히려 은밀하고 지능적으로 변했다.

최근 경찰이 장안동 일대 안마시술소 등 변종 성매매 업소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경찰관 기동대까지 단속에 투입하는 등 `강수'를 두고 있으나 업주들이 숨바꼭질하듯 단속을 피해 나가는 풍경은 여전하다.

◇ 변종 성매매업소 음지서 활개 =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에서 장안동삼거리까지 1.5㎞에는 각종 유흥업소의 현란한 간판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간판은 '안마'다.

경찰은 이 지역에서 영업 중인 불법 안마시술소 60∼70여개 가운데 대부분이 신종·변종 성매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도심과 그리 멀지 않은 주택가에 20∼30m마다 성매매업소가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는 셈이다.

올해 7월 중순부터 관할 동대문경찰서가 대대적인 집중 단속에 나서면서 불이 꺼진 간판들이 늘어났지만 실제로는 모양새만 `휴업 중'이고 불만 끈 채 `은밀한 거래'를 계속하는 업소도 드물지 않다.

그간 경찰은 적발된 이 지역 업소로부터 욕조와 침대 등 성매매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시설을 뜯어내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했으나 업소가 워낙 많은데다가 비밀리에 영업이 이뤄져 성매매를 뿌리뽑지는 못하고 있다.

자동잠금장치로 굳게 닫힌 업소 현관 문에 `내부 수리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지만 호객꾼이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하면 손님을 받는 곳도 드물지 않은 풍경이다.

이런 업소들은 겹겹이 설치된 문과 어지러운 복도를 통과하면 수십개의 밀실이 나오는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는데다가 종업원들이 건물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TV로 출입 동향을 살피고 있어 기습 단속에도 어려움이 많다.

그나마 장안동은 주민들의 `성매매 근절' 요구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공개적으로 영업하는 성매매 업소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 버젓이 드러내 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전화방', `휴게텔', `인형방' 등 신종 성매매 업소들도 단속의 눈길을 피해 곳곳에서 성업하고 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전화방을 비롯한 변종 풍속영업소는 2005년 5천841곳에서 작년 9월 현재 9천451곳으로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온·오프라인 `1대1 성매매' = 업소가 고용한 다수의 여성이 한꺼번에 성매매를 하던 옛 `성매매 집결지'가 대부분 해체되면서 새로운 수법으로 등장한 것이 `1대 1' 성매매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대 1 성매매는 인터넷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기업형 1대 1 성매매'가 성행하고 있다.

속칭 '인터넷 포주'로 불리는 남성이 채팅으로 성구매를 하려는 남성을 유인해 성매매 업주에게 소개하면 이 업주는 성구매자에게 여종업원을 보내 준다.

이 때 성매매 장소로 자주 쓰이는 곳이 사무실로 위장한 오피스텔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단속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는 수법인 셈이다.

이 오피스텔에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속칭 `이모'도 있고 운전을 해 주는 `삼촌'도 있다.

이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움직이며 성매매 수익금을 나눠 가진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영업 수법에 대해 "성매매업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업주들이 어떤 식으로든 영업방식을 바꿔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결지 감소했으나 성매매 적발은 늘어 = 성매매 특별법 시행 4년간 옛 성매매 집결지 내의 업소 수는 꾸준히 줄었으나 변종·신종 성매매 수법이 성행하면서 최근 2년반 사이 성매매 사범 적발 건수는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18일 경찰청의 성매매 단속현황 집계에 따르면 2007년 전국 성매매집결지 내 업소수는 995개로 전년대비 1천97개보다 10% 가량 줄어들었다.

이 곳에 종사하는 종업원수도 2006년 2천663명으로 집계됐지만 이듬해 2천508명으로 150여명이 줄었다.

이런 추세는 대표적 집창촌이었던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속칭 `청량리 588'에서도 확인된다.

특별법 시행일인 2004년 9월 23일 직전 '청량리 588'에는 146개 성매매 업소에서 382명의 성매매 여성이 있었으나 4년이 지난 지금 이 일대의 성매매 여성은 예전의 10분의 1 수준인 34명에 불과하고 업소 수도 32개로 대폭 줄었다.

올해 이 지역의 성매매 적발 사례는 9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성매매 집결지의 쇠락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사범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06년 3만4천795명이었던 전국 성매매사범은 지난해 4천400여명 늘어난 3만9천236명으로 집계됐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2만명이 넘는 성매매사범이 적발됐다.

유형별로 보면 업주(3천653명→4천359명)나 성매매여성(3천654명→4천886명)은 1천명 가량 증가한 데 비해 성매수남성(2만7천488명→2만9천91명)은 2천명 넘게 늘어나며 거의 3만명에 육박했다.

법시행 후 4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성매매집결지는 사실상 해체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집결지 바깥에서 벌어지는 성매매는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는 얘기다.

◇"성매매 근절은 단속.처벌 강화가 열쇠"= 성매매 전력이 있는 피해여성을 돕는 자활기관 관계자들은 성매매 근절을 위해 당국의 단속과 처벌이 한층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다시함께센터 조진경 소장은 "단속이 형식적이고 성매매사범에 대한 처벌수위가 과거 윤락행위 등 방지법(윤방법) 당시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은 문제"라며 "처벌수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성매매 불법수익에 대한 국가의 추징·몰수가 전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 허나윤 팀장도 "최근 장안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단속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간 밀린 숙제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단속을 넘어 행정적, 법적처분이 병행돼야 전체 성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와 성매매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관련단체들은 법시행 4주년을 앞두고 개최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성매매 특별법 시행으로 성매매 문제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변화는 있었지만 법 집행력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성매매 특별법을 철저히 집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의견을 반영하듯 서울경찰청은 이달 17일 일선 근무 경험이 있는 경찰로 구성된 `스텔스' 부대를 투입해 종로, 용산, 영등포, 동대문, 강남 등의 성매매업소와 불법 사행성 게임장을 집중 단속키로 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관할 지역 경찰서장 명의로 성매매 업주 등에게 편지를 보내 "불법 풍속업소는 뿌리뽑혀야 한다는 것이 경찰의 확고한 생각이며 이를 인식해 이번 기회에 건전한 업종으로 전환하기를 바란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10년 전 `성매매 단속반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김강자 전 서울 종암경찰서장처럼 단속 일변도 조치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생계 대책이 없는 성매매 여성들은 이발소나 원룸 등으로 장소를 옮겨 성매매를 계속하게 될 것이며 오히려 주택가가 성매매 적성 지역이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 김 전 서장의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한미희 임형섭 기자 edd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