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 인수에 실패한 산업은행(KDB)의 이해 득실은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신뢰도에 다소 흠집이 생겼지만 전 세계 금융시장에 KDB를 알리는 계기가 돼 전체적으로 득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월가를 비롯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산업은행을 주목한 것은 지난 8월20일부터.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자 보도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리먼 브러더스가 산업은행 등에 지분 50%를 매각하기 위한 비밀협상을 벌였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로이터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더타임스 등 세계 유력 언론에서 KDB와 리먼의 협상 진행 과정을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다. 언론들이 KDB와 리먼 간 협상이 진척되고 있다고 보도하면 그날 리먼 주가와 미국 증시가 뛰고,KDB와 리먼 간 협상이 결렬 위기에 빠졌다고 보도하면 리먼 주가와 미국 증시가 폭락하는 일이 여러 차례 빚어졌다. '달러나 빌리러 다니는 한국의 작은 국책은행' 정도로 여겼던 KDB가 월가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 있는 은행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 추진은 한국의 '9월 위기설'을 잠재우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존 프라빈 푸르덴셜인터내셔널의 수석 전략가는 이달 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투자공사(KIC)가 지난해 메릴린치 지분을 매입하고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할 정도로 여력이 있는 한국 금융시장이 외환위기를 겪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위기설'에 고개를 젓기도 했다.

산업은행이 이번 딜에서 잃은 것은 M&A 협상에 나섰다가 중도에 포기함으로써 신뢰도에 금이 가 향후 다른 M&A 시도 때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산업은행이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점,글로벌 투자은행을 휘하에 둘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 등이 실(失)이라면 실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