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가 소속 선수의 영어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침을 2주여 만에 철회했다.

그동안 골프선수와 언론, LPGA 투어 후원사들이 이 방침에 반대했고 일부 미국 정치인들이 법적 대응 입장까지 밝히는 등 비판이 확산되자 마침내 정책을 거둬들인 것이다.

LPGA가 `영어사용 의무화' 방침을 공개한 것은 지난달 20일. 이는 골프전문잡지인 골프위크 매거진이 세이프웨이 클래식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 같은 방침을 전달했다고 보도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특히 이 정책은 공식 발표된 것이 아니라 한국 선수들 만이 모인 자리에서 처음 공개한 점 때문에 LPGA를 석권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을 겨냥해 영어의무화 정책을 도입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뉴욕 타임스는 새 정책이 언론에 공개된 지 이틀 만에 `LPGA의 나쁜 아이디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영어사용 의무화는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선수를 차별하는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면서 차별적인 규정을 선수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모욕적이자 자멸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최경주 등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들도 비판에 가세했고 세계정상의 여자골퍼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LPGA는 이렇게 비판이 일기 시작하자 새 정책의 필요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새 정책의 골자는 모든 투어 선수들이 언론 인터뷰와 프로암대회, 우승소감 발표시 협회의 `중요한 고객'인 팬과 언론, 후원자들과 영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강제하기 위해 선수들은 투어 참가 이듬해 말까지 협회가 요구하는 이러한 영어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요구수준을 달성할 때까지 투어 참가자격이 정지된다는 벌칙규정까지 마련됐다.

마이크 스캔런 LPGA 대변인은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는 협회가 소속 선수들의 전문가 자질 개발과 언어훈련을 위해 수년 전부터 해온 일을 단순히 확대한 것"이라며 "효과적인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LPGA 사업과 선수들의 성공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LPGA 측이 새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은 사이 아시아계들이 많은 캘리포니아의 주 정부 인사와 상ㆍ하원 의원들이 비판 대열에 동참, 법적 대응 방침까지 밝혔다.

중국계인 민주당 소속 르랜드 이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은 4일 LPGA의 이번 정책이 주와 연방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대한 법적 의견을 구하고 있으며 이같은 입장을 LPGA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캐롤린 바이븐스 LPGA 투어 커미셔너는 이번 주 초 이번 정책의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소속 선수들에게 메모를 보냈다.

바이븐스는 메모에서 협회는 외국 선수들에게 유창한 영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LPGA 선수로서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정책 고수 입장을 견지해온 LPGA가 5일 갑자기 `올해 말까지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겠다'며 뒤로 물러난 데는 일부 투어 후원업체들의 요구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993년부터 매년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서 `스테이트팜 클래식'을 후원하는 스테이트 팜 보험사는 LPGA에 이번 정책의 재고를 강력히 권고했고, "이번 조치는 재 후원계약 여부를 결정할 때 고려할 만한 문제"라며 강한 반대의 뜻을 피력했다.

이에 리바 갤로웨이 LPGA 부위원장은 "스테이트 팜과 많은 대화를 해왔고 앞으로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면서 "다른 후원사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후원사의 비즈니스를 위해 소속 선수의 영어사용 의무화 정책을 추진한다는 협회가 바로 후원사의 반대에 부닥친 것이다.

결국 투어 후원사들의 이 같은 입장이 알려진 지 이틀 만인 5일 바이븐스 커미셔너는 벌칙 규정을 포함하지 않은 수정된 정책을 올 연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최재석 특파원 bond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