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저탄소,녹색성장'을 들고 나왔다. 60년을 내다 본 장기비전이란 점에서 대부분 수긍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녹색'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복잡한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 녹색하면 유럽의 '녹색당'이 떠오른다고 하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녹색당은 환경보호,반핵(反核)의 대명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 녹색은 녹색당,좌파의 전유물이 아닌 쪽으로 가고 있다. 영국 노동당의 브라운 총리가 멋쩍을 정도로 보수당의 캐머런 당수도 녹색을 외친다. 기후변화를 당의 제1과제로 외치는가 하면 푸른색 보수당의 새 슬로건으로 'Vote Blue,Go Green(보수당에 투표하고 녹색으로 가자)'을 내걸었다. 독일도 그렇다.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도 녹색을 들고 나왔다. 재집권을 위해선 녹색당과의 연정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돈다. 지난날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이른바 적-녹 연정)을 생각하면 좌,우파 모두 녹색에 구애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오바마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공화당 매케인 후보도 녹색을 말한다. 일본 자민당의 후쿠다 총리가 내놓은 '후쿠다 비전'도 녹색 비전으로 불릴 만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미국 등 모든 국가들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인식하고,녹색경제로의 이행을 위해 협력하라고 촉구한다.

정치적으로 집권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좌,우파가 서로 베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게 최근의 흐름이고 보면 대립하던 환경론자와 성장주의자들도 서로 벤치마킹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쨌든 지난 수십년간 우파들이 믿어왔던 '녹색ㆍ환경=좌파논리'가 깨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때문에 좌,우파가 함께 환경문제를 고민하면 새로운 대안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녹색도 녹색 나름이다.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녹색이 잘못하면 새로운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수용가능한' 녹색이 아닌,'극단적인' 녹색에 대한 우려다. 당장 '녹색=신재생에너지'가 그렇다. 신재생에너지는 국토면적, 환경여건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국가별 단순비교는 정말 무리다. 소득수준,재정부담도 변수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2.4%에서 2030년에는 11%로, 2050년에는 5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벌써부터 실현가능성보다 환경,시민단체를 의식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녹색=반원전'도 경계대상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시설비중을 26%에서 41%로,발전비중은 36%에서 59%로 각각 늘린다고 했지만 왠지 당초 의지에 비해 후퇴한 느낌이다. 그린피스 창립 멤버이고 30여년간 국제환경운동 지도자로 활동했던 패트릭 무어가 2005년 미국 의회에서 원전을 에너지 위기를 해결할 실용적,친환경적 수단이라고 고백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녹색=반자본주의,반성장주의'다. 녹색성장을 뒷받침할 돈은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업과 산업의 성장에서 나온다. 영국 보수당 캐머런 당수는 환경론자들도 자본주의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녹색성장을 내걸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비전을 구체화할지 큰 숙제가 남았다.

안현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