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의 재건축 아파트값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0일 조합원 지위양도 요건 등 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을 발표했는데도 이번 주 강남을 중심으로 한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올 들어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금리ㆍ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경기가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일고 있어 규제가 일부 완화되더라도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쉽사리 반등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이른바 '강남 부자'들이 많이 사는 압구정동의 경우 이번 주에도 집값이 떨어진 단지가 없어 대조를 이뤘다.
추락하는 강남 재건축 "백약이 무효"
◆서울 재건축 하락폭 올들어 최대

18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재건축 추진 아파트 가격은 지난주에 비해 0.38% 떨어졌다. 이는 올 들어 주간 단위로는 가장 큰 하락률이다.

하락폭도 지난주(-0.29%)에 비해 0.09%포인트 커졌다. 특히 강남ㆍ서초ㆍ송파ㆍ강동구 등 강남 4개구는 0.41% 떨어져 하락세를 주도했다.

재건축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떨어진 곳은 송파구였다. 일주일 새 1.84%나 떨어져 올 들어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잠실 주공5단지는 주택형별로 한 주 동안 5000만원가량 떨어졌다.

인근 중앙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일부 급매물을 빼고는 거래가 거의 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개포동 주공1단지는 주택형별로 일주일 동안 1000만원가량 떨어졌다. 인근 개포부동산 관계자는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 발표 당일에 잠시 반짝거래가 이뤄졌지만 다음 날부터는 매수자들의 문의전화조차 한 통 없다"고 말했다.

서초구 역시 잠원동 대림아파트가 주택형별로 3000만~4000만원 떨어지는 등 재건축 아파트는 하락세가 이어졌다.

반면 강남구 압구정동의 재건축 아파트들은 이 번주 하락세를 기록하지 않았다. 주간 변동률이 제로(0)%였다. 이곳은 올 들어 거의 유일하게 재건축 아파트값이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현대,한양 등 압구정동 재건축 대상 아파트 가격은 올 들어 1.47% 오른 상태다. 재정 형편이 좋은 '정통 강남 부유층'이 많이 살고 있어 급매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인근 중개업계의 분석이다.

◆금리상승에 경기침체까지 겹쳐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은 세제ㆍ대출ㆍ거래규제에 금리상승과 경기침체까지 겹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수요자보다 투자자들이 주로 찾는 재건축 아파트의 특성상 경기와 금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고정금리형이 이달 들어 연 9.1%를 넘어서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서는 등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김희선 부동산114 전무는 "재건축 투자자금 마련을 위한 이자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데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도 풀릴 조짐이 없다"며 "불경기에 따른 자산 디플레이션(가격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어 투자자들이 재건축 시장에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주가ㆍ펀드시장 침체도 재건축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중국펀드 등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펀드 투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여유계층이 많다보니 재건축 등 부동산쪽으로 투자 자금이 유입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재테크팀장은 "정부의 재건축 규제완화 검토 방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시기나 내용이 없다 보니 수요자들의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며 "규제 완화를 가시화하고 양도세 및 대출 관련 규제도 함께 풀어야 거래가 회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도원/박종서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