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관리에 경영진이 너무 소홀히 했던 것 아닙니까?"

12월 결산 상장법인들의 정기주총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소액주주들의 일침에 경영진이 쩔쩔매는 모습 등 흥미로운 주총 풍경이 주목받고 있다.

◆날선 개미 VS. '거수기 논란' 기관 개미들 날 선 공격에 경영진 진땀

지난 20일 열린 국민은행 주총에서 강정원 행장은 주가하락 등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잇따른 성토에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2년 전에 비해 주가가 반 토막이 나 주주들이 신명이 나지 않습니다.

보수를 올려줄 테니 주가만 높여 주세요."

"최근 시가총액 부진한 것은 경영진의 우유부단함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외한은행 인수 무산도 사전에 인지할 능력이 없었습니까."

앞서 14일 열린 SK에너지 주총에서도 한 개인투자자가 자산의 60%를 SK에너지 주식에 투자했는데 3개월 간 주가가 50% 이상 떨어지면서 충격을 받았다며 앞으로 믿음을 갖고 기다려야 할지 고민된다고 성토했다.

같은 날 열린 현대차 주총에서는 17세의 이현욱군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석해 "감사보고서 안에 정몽구 회장의 비자금 사실 등도 반영된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 경영진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이에 비해 12월 결산 상장법인에 투자한 기관투자자들의 주총 안건에 대한 반대율은 1%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나 경영을 견제, 감시해야 할 기관투자자들이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비판이 일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4일까지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의 주식을 보유한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공시를 분석한 결과, 의결건수 기준으로 95.36%에 대해 찬성을 표시한 반면 반대 의견 행사는 0.4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눈길 끈 이색 주총장

주총장의 딱딱한 분위기를 탈피하려는 기업들의 변신이 눈길을 끌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달 29일 파주 'LCD 클러스터 게스트 하우스'에서 원탁 테이블에서 오찬을 겸한 주총을 열어 이목을 끌었다.

흰색 테이블보가 깔린 원형 테이블에 앉아 오찬을 하며 'VIP' 대우를 받은 주주들도 색다른 주총 진행방식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풀무원도 지난 20일 남산 자락에 위치한 문화공간인 '문학의 집'에서 토크쇼를 연상케 하는 이색 주총을 열었다.

남승우 사장은 "그동안 기업들의 주총이 어떻게든 주주들의 발언을 막고 회사 방침대로 안건을 처리해 버리는 자리였다면 오늘 '열린 주총'은 주주와 소비자들에게 알릴 점은 투명하고 당당하게 알리면서 즐겁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며 이날 주총의 의미를 설명했다.

◆'장하성펀드' 주주행동주의 성적표는(?)

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장하성펀드)의 노력이 올해 일부 결실을 거뒀다.

지난 17일 열린 한국전기초자 주주총회에서 장하성펀드가 추천한 김석연 변호사가 52.8%의 찬성표를 얻어 비상근 감사로 선임된 것이다.

이달 초 주주총회를 연 삼양제넥스도 장하성펀드가 추천한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장하성펀드와 지배구조 문제로 오랜 갈등을 빚어온 동원개발도 최근 펀드 측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으며 양측이 서로 추천한 사외이사가 선임되도록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동원개발은 21일 열린 주총에서 펀드 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주들에 대한 현금배당금을 당초 계획했던 300원에서 450원으로 올렸다.

그러나 21일 열린 벽산건설과 대한제분, 성지건설 주총에서는 펀드 측이 추천한 감사 후보의 선임이 잇따라 무산돼 현실의 벽을 실감케 했다.

펀드 고문을 맡고 있는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기관투자자들이 자신들에게 투자한 투자자들의 이익에 충실해야 하는데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주총 58.31% 완료..'삼성 비자금의혹' 주총 최대 관심

증권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법인 1천629개 기업 가운데 지난 21일까지 주총을 완료한 기업은 58.31%에 해당하는 950개사(유가증권시장 504개, 코스닥시장 446개)로 집계됐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나머지 상장법인들의 주총 가운데는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한 관련 기업들의 주총이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경제개혁시민연대는 차명계좌 개설 등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과 연계된 것으로 지목받고 있는 우리금융지주와 삼성증권(또는 삼성화재)에 주총에 참석해 비자금 조성 및 은닉 의혹과 내부 통제장치의 작동 여부, 관련자에 대한 문책 등을 따질 예정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오는 28일 주총을 열 예정이지만 삼성증권과 삼성화재는 3월 결산 법인이어서 4월 이후에나 주총이 개최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