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의장이 이끄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경기둔화를 방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중앙은행 고유의 임무를 무시할 수 없다는 곤혹스러움이 11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내놓은 통화정책성명서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FRB는 그러나 12일 대규모 유동성 공급계획을 밝혀 신용경색 해소라는 급한 불부터 끄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월가에서는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FRB가 이날 발표한 통화정책 성명서의 골자는 크게 세 가지다.

금리인하가 성장촉진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과 미 경제가 둔화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점,그리고 인플레이션 압력은 여전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로는 경기둔화 우려에 방점을 찍었다.

그렇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을 다시 한번 강조함으로써 FRB가 직면한 고충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러다보니 기준금리와 재할인율을 동시에 0.25%포인트 내리고서도 11일 증시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결과를 자아냈다.

FRB는 우선 지난 10월의 성명서에 포함됐던 "인플레이션의 상승 위험과 경기 둔화 위험이 거의 균형을 이룰 것으로 판단한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경기둔화 위험성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 9월부터 세 차례 계속된 기준 금리인하(총 1.0%포인트)로 완만한 성장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이 문구로 인해 시장참가자들 사이에선 '추가 금리인하 여지가 좁아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중립적 통화정책을 거둬들이면서도 애매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곤혹스러운 상황임을 나타냈다.

FRB는 경기둔화에 대해선 이전보다 강한 톤으로 우려의 시각을 담았다.

구체적으론 "미국 경제가 주택경기의 조정 심화와 기업 및 소비지출의 위축이 반영되면서 둔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매파적 성격도 견지했다.

FRB는 "최근 유가와 상품 가격의 상승 등이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고,일정부분 인플레이션 위험이 남아 있다"는 문구를 유지했다.

월가에서는 FRB의 이런 표현은 현재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을 나타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건 아니다.

FRB는 "앞으로 금리정책은 경제상황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는 종전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로미뤄 상황이 좋아지 않을 경우 내년 1월 열리는 FOMC에서 금리를 다시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리처드 버너도 "FRB가 결국 1.0%포인트의 기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FRB는 12일 입찰방식을 통해 미국 내 금융회사에 대규모 자금을 직접 공급하고 유럽중앙은행(ECB) 등과의 환율스와프를 통해 국제금융시장에도 유동성을 공급키로 하는 등 유동성 공급대책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론 대형 금융회사들을 대상으로 입찰을 실시해 필요한 금융회사에 자금을 직접 공급키로 했다.

첫 입찰은 오는 17일 200억달러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아울러 ECB와 스위스 중앙은행을 통해 240억달러를 공급키로 했다.

금리인하 여부를 놓고 딜레마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유동성 공급을 통해 신용경색현상은 일단 타개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