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 대림-한화 전면전 … '한지붕 두집 살림' 청산하나
"내 딸이 김승연 회장 집안의 며느리다. 사돈인 김 회장을 고소하는 내 심정이 어떻겠냐."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은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대림산업 유화부문 한주희 대표 명의로 김승연 한화 회장과 허원준 한화석유화학 사장 등을 이날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앞서 주초에는 대림 측의 이봉호 여천NCC 사장(공동 대표이사)이 한화 측의 이신효 여천NCC 부사장(공동 대표이사)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며 "앞으로 여천NCC 문제는 대화가 아닌 법적 수단으로 해결할 것이며 손해배상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이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여천NCC의 등기이사로 현업에 복귀한 후 사태 해결을 위해 '전면전'을 선택한 셈이다.

▶본지 13일자 A15면 참조

◆대림-한화 갈등 법정으로

이 명예회장이 김 회장 등을 고소하면서 여천NCC를 사이에 둔 대림과 한화의 갈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조짐이다.

당초 이 명예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해 갈등 해결을 위한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으나,'검찰 고발'이라는 강경책을 선택함에 따라 법적 공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으로 확전됐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김승연 회장의 관리에 책임이 있다"면서 "대림산업과 임직원들의 명예를 훼손시켰기 때문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화측으로 인해) 지난 7일부터 내리 5일 연속 (대림산업의)주가가 내림세였다"며 "1조92억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빠졌다"고 주장했다.

기자간담회 도중 이 명예회장은 2001년 신문에 냈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께 드리는 공개 호소문' 광고 복사본을 직접 나눠주기도 했다.

김 회장이 대화와 타협에 나서지 않아 사태가 악화됐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여천NCC 쪼개지나

여천NCC는 1999년 대림과 한화가 각각 50 대 50으로 출자해 만든 국내 최대의 나프타분해설비(NCC) 업체다.

여천NCC는 국내에서 기업이 스스로 산업 구조조정을 이뤄낸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었지만,2003년 인력 구조조정을 놓고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수년 동안 지속돼왔다.

지난 10월에는 정기인사에 불만을 품은 대림 출신의 현장 중간간부 60여명이 한화 출신 공동대표인 이신효 부사장을 항의 방문했고,이 부사장이 이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한화 측도 법적 대응을 검토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화 측은 "대림 측이 합리적인 방법이 아닌 물리적 방법으로 문제를 일으킨 후,이제와서 한화 측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김승연 회장 등 3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 명예회장은 비이성적 돌출 행동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여천NCC는 갈등 봉합보다는 양측의 결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미 업계에서는 최근 대림과 한화 측이 합작을 포기하고 회사를 쪼개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총수들의 감정 대립까지 심화되면서 '한 지붕 두 살림'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유화업계 관계자는 "여천NCC가 30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알짜 기업이기 때문에,어느 한 쪽이 50%의 지분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빅딜'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결국 합작관계를 서로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지 않겠냐"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