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작고 백성들은 가난하다. (중략)그렇기 때문에 먼 지방의 물자가 잘 유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재물이 늘고 온갖 도구들을 생산할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조선조 400년 동안 다른 나라 배는 한 척도 오지 않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제가는 200년을 꿰뚫는 통찰력을 지닌 대학자였다.

쇄국주의를 최선의 방어책으로 삼던 시절에 역저 '북학의(北學議)'를 통해 "무역만이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제가의 주장은 당대에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그의 '무역부국론'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으로 대한민국이 산산이 조각난 뒤부터였다.

그러기를 50여년.'2007년의 대한민국'은 200년 전 박제가가 말한 그대로 '무역 덕분에' 먹고 사는 구조로 변모했다.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무역규모는 5915억달러.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3.5%가량 늘어난 수치다.

수출은 원화 강세 및 고유가 등 악조건을 이겨내고 3028억달러를 기록,작년 같은 기간보다 13.8% 늘어났다.

수입은 2887억달러로 13.2% 증가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 수출 3700억달러와 수입 3520억달러를 기록,사상 처음으로 '무역 7000억달러 시대'를 열 것이란 게 한국무역협회의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홍콩을 제치고 '세계 11대 무역대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규모는 6348억달러로,홍콩(6584억달러)에 근소한 차이로 밀렸었다.

하지만 홍콩의 올해 1~9월 무역 증가율이 9.4%에 그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역전'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무역 7000억달러 시대'가 주는 의미는 크다.

13억 인구 대국인 중국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무역 7000억달러 시대를 연 모든 국가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무역 7000억달러 달성'은 1인당 국민소득이 이제 막 2만달러 수준으로 올라선 한국이 조만간 3만달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저력을 갖췄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한국은 1988년 무역 1000억달러를 달성한 지 19년 만에 7000억달러 시대를 열었다"며 "이는 중국(15년) 미국(16년) 독일(17년)에 이은 네 번째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무역 7000억달러 달성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원화 강세와 원자재가 상승 등 최악의 경영여건 속에서도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는 데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수출증가율은 13.8%.이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 3700억달러어치를 수출,'1일 10억달러 수출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 기업들이 온갖 악조건을 뚫고 수출을 늘릴 수 있었던 데는 '포스트-붐(PoST-VMㆍ폴란드,슬로바키아,터키,베트남,말레이시아)'을 비롯한 차세대 유망 시장에 주목한 게 주효했다.

이들 5개국에 대한 수출은 올 들어 9월까지 156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5.2%나 증가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독립국가연합(CIS)에 대한 수출도 각각 181억달러와 79억달러로 급증했다.

두 곳에 대한 수출증가율은 각각 46.2%와 50.1%에 달한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올해 수출증가율이 13% 중반으로 예상되는 만큼 1980년 이후 두 번째로 5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히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성적이지만,무역업계의 표정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원화 강세 탓에 채산성이 바닥까지 떨어진 탓이다.

실제 올 2분기 수출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5.4%로 2005~2006년 평균인 6.1%에 비해 0.7%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2.8%까지 추락했다.

이희범 무역협회 회장은 "채산성 악화를 이겨내지 못한 중소 수출기업들이 판매가격을 올리면서 주요 선진국 시장 점유율이 하락 추세를 걷고 있다"며 "2010년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하기 위해선 정부도 환율 안정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