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

노무현 대통령이 2일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가는 상징 장면을 연출하며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갔다.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비무장지대 안의 군사분계선(MDL),이 금단의 선을 넘어 평양으로 향한 것이다.

나는 그 노란 페인트 선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휴전 이래 군사분계선은 민족이 넘어야 할 장벽이고,인적 교류와 물자의 유통을 막고 삶을 반쪽짜리 불구로 고착시키는 고통과 불행과 수모의 표상이다.

이것은 국토의 허리를 가른 채 끝없이 덧나는 상처,심장을 좀먹는 항체가 없는 영원한 바이러스였다.

이 군사분계선은 우리 머릿속에 지울 수 없게 깊은 낙인을 찍었다.

노 대통령의 말마따나 더 많은 발길들이 이 선을 넘나들 때 이 장벽은 낮아지고 결국은 사라질 것이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굳이 걸어 월경(越境)한 것은 그 몇 발걸음 안 떼는 그 걸음이 민족의 염원을 담은 제의(祭儀)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정오 무렵 평양의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환영식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내며 영접을 나왔다.

남북의 정상이 포옹은 없었지만 악수를 나누고 붉은 꽃을 흔들며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 앞을 지나갔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데,내 가슴은 곧 뜨거워진다.

벌써 7년이 지났던가! 2000년 6월13일,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을 '통 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와 영접했다.

남북 정상이 포옹하고 활짝 웃는 '역사적' 장면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남북이 상호불신을 씻고 평화로 나아가는 그 영년(零年),나는 남북 사이에 가로놓인 이데올로기의 빙벽(氷壁)이 녹아내리는 환상을 보았다.

그때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이후 더 많은 사람들과 물자들이 남북을 오가고 이데올로기의 장벽은 얇아졌지만,군사분계선이란 악령이 눈을 부릅뜨고 있고 핵과 군비 확장이란 저 사신(死神)들이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동안은 우리는 여전히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

상호신뢰,평화체제 구축,남북 경제협력,남북의 공존과 번영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민족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의적 가치다.

그 대의의 과실들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수확할 때까지는 아직 우리는 뜨겁게 타는 목마름과 배고픔 속에 있어야 한다.

냉전은 지난 세기의 마지막 유물이요,민족사의 수치다.

냉전의 산물인 군사분계선은 세계 유일의 흉측한 괴물이다.

분단은 어느덧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

군사분계선이 생길 때 태어난 사람이 쉰을 훌쩍 넘어 장년이다.

아기가 장년이 되기까지 남북이 반목과 대립을 하고 소모적 군비 경쟁으로 허송세월하는 동안,세계는 우리를 저만큼 앞질러갔다.

그 세월 동안 남북은 비무장지대에 수도 없는 지뢰들을 묻고 몇 백만의 젊은이들을 중무장시켜 군사분계선에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었다.

민족 전체를 가사상태(假死狀態)에 빠뜨렸던 이 어리석은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춰야 한다.

이제 그 뺄셈의 역사,그 자해적 분단의 역사를 청산해야 할 때다.

남북 정상이 악수를 하고 나란히 걸으며 사열을 한다.

7년 전과 비교해 감흥은 약간 다르지만 역시 가슴이 뜨거워진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를 나누며 함께 걷는 모습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남북 정상은 민족의 당위 앞에서 태초의 정직성과 절박함으로 더 자주 만나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냉전종식과 군사분계선이 사라질 날들은 분명히 앞당겨질 것이다.

남북의 적대관계가 끝나면 군사분계선도 사라지고,그 다음엔 휴전선 일대에서 젊음을 군복무에 차압당한 채 낮밤을 허송세월하는 젊은이들을 제 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아,군사분계선이 사라지고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는 그날 나는 여름이면 평양의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대동강변을 산책하고 훌쩍 묘향산으로 여행을 다녀올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를 거쳐 시베리아 철로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여행에 나설 것이다.

지금 내 심장은 빠르게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