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이 남성정장 부문에 '그린 프라이스(green price)' 제도를 도입,제조업체들에 정상 판매가격 '현실화'를 요구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높은 가격에 정상가를 책정해 놓고 수시로 세일을 통해 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정상가격을 '현실적'인 가격으로 낮추고 세일도 정해진 기간에만 하라는 게 골자다.

하지만 제일모직,LG패션,FnC코오롱 등 제조사들이 "가격 거품은 매출 대비 30%에 육박하는 백화점 수수료가 조장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데다 백화점끼리도 견해가 달라 당장 현실화할지는 의문이다.

◆잦은 세일은 가격거품의 증거?


롯데백화점은 22일 "상설 할인 판매로 인해 소비자들이 남성정장의 판매 가격에 불신을 갖고 있다"며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대를 제시하고 임의적인 가격 할인 판매를 없애기 위해 '그린 프라이스'를 도입키로 했다"고 밝혔다.

가격 정찰제 및 할인 기간 준수를 통해 '남성정장을 정상 가격에 사면 바보'라는 인식을 없애겠다는 것.롯데백화점 관계자는"다음달까지 제조업체의 신청을 받아 10월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라며 "성과가 좋은 브랜드 3개를 선정해 1% 수수료 감면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체의 고유 권한인 가격 결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얘기다.

롯데백화점의 이 같은 결정에는 남성정장의 시장 질서가 무너졌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한 백화점 MD(상품 기획자)는 "2∼8월 SS(봄·여름) 시즌의 경우 3월 초부터 4월 중순까지 세일이 진행되고,20일 정도 지나 5월 초부터 8월 말까지 할인행사가 이어진다"며 "노(no) 세일 기간에도 점원과 말만 잘하면 할인을 해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설 할인 체제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LG패션 '마에스트로'의 99만원짜리 여름 정장은 2월에 출시돼 2주 안팎 정상가에 팔릴 뿐,백화점 정기 세일과 브랜드 세일을 거쳐 30% 싸지고 8월 '시즌 오프(off)' 기간엔 40% 저렴한 59만4000원까지 내려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악화된 데다 제조업체들 간 시장점유율 쟁탈이 심해지면서 가격 정찰제가 무의미해졌다"며 "롯데 외에 현대,신세계 등 다른 백화점들도 제조업체 임원들과 수시로 간담회를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해 왔다"고 말했다.

◆실현되기까지는 진통 불가피


롯데백화점의 제안에 대해 한 제조사 관계자는 "가격 결정 권한은 어디까지나 제조업체에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남성정장의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2∼3%에 불과하다"며 "가격을 현실화하려면 수입 브랜드와 비교해 지나치게 높은 백화점 매출 수수료부터 깎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제조사 관계자도 "장사를 못해 세일이라도 해서 재고를 털어내려는 것이지 이걸 두고 정상 판매가에 거품이 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발,'그린 프라이스'제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백화점 3사의 입장이 각기 다른 것도 '그린 프라이스'의 현실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신세계는 전일 주요 제조업체와 임원급 간담회를 갖고 변화 없이 지금껏 해오던 대로 FW(가을·겨울) 시즌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들은 롯데·신세계 간 신경전에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휘 기자/이정민 인턴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