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등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이랜드 계열 대형마트의 노사 분규에는 사회 양극화 해소차원에서 도입된 비정규직보호법의 딜레마가 총체적으로 담겨져 있다.

9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이랜드측은 노조가 매장 점거 등 물리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협상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인 가운데 노조는 사측이 긍정적인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불매운동'과 점거농성 등 강경 투쟁을 벌인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양측간 정면충돌 양상이 장기화될 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이랜드 노조의 투쟁에 합류하면서 노동계와 경영계가 이랜드를 놓고 대리전을 벌이는 형국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랜드 사태 배경에는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와 외주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와 고용 유연성이 떨어져 오히려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경영계의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 노사 `대리전'으로 번지나 = 비정규직법은 법안 처리과정에서부터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 법 시행 이후의 후폭풍이 이미 예견됐었다.

정부는 2004년 11월 비정규직법안을 국회에 상정했지만 노사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2년여간의 우여곡절 끝에 작년 말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은 정규직 근로자의 임신, 육아휴직 등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만 기간제(계약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간제 사용사유제한'이 도입되지 않은 채로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 비정규직이 오히려 확산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랜드측이 비정규직법 시행에 맞춰 2년 이상 근무한 홈에버의 비정규직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되 직무급제를 도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시정제도를 회피하고 뉴코아의 계산원을 외주화한 것 등은 노동계가 우려했던 비정규직법 부작용의 핵심 골자들이다.

경영계측도 이랜드 사태는 비정규직법 제정과정에서 기업들이 우려했던 바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영계는 그동안 비정규직법은 노동시장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 인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늘리고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결국 근로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 과정에서 심각한 노사갈등이 빚어질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이처럼 이랜드 노사 분규를 통해 비정규직법의 핵심적인 쟁점들이 부각되면서 비정규직법에 불만을 품고 있는 민주노총과 경영계가 이랜드 사태에 직접 개입하거나 장외에서 불법 행위 엄단을 촉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직.간접적으로 가담하면서 노사간 전면 대리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 노사 해법 제각각..법 정착까지 `가시밭길' =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노동시장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오면서 노사 모두 법안을 수정하거나 보완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그 해법에 대해서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 정국에서 비정규직법의 보완이 이뤄지기는 힘들다는 관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노동계의 경우 현재 비정규직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사용사유제한을 반드시 도입해야 하고 파견허용업종 축소, 차별시정 신청권자를 비정규직 근로자 개인에서 노조로 확대하는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사용사유제한은 기업의 인력운용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할 것이고 노조도 차별시정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차별시정 신청이 과도하게 제기돼 노사간 갈등만 증폭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영계는 현재 파견제의 경우 법에 명시된 금지사항만 위반하지 않으면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을 도입, 파견허용업무를 확대해야 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정규직 노조가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사가 비정규직의 해법을 놓고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노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임금체계를 연공서열주의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는 직무급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법이 일부 미진한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노사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부정적인 면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데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노사정 모두 대승적 차원에서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현영복 기자 youngb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