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메릴린치 씨티은행 등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을 통해 외환 보유액을 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외환 보유액이 2400억달러를 돌파하는 등 규모가 불어나자 외환 보유액 투자처를 다변화하고 수익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다.

이는 중앙은행이 외환 보유액으로 위험자산 투자에 나서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7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한은은 최근 메릴린치 씨티은행 등 해외 30여개 자산운용사에 외환 보유 자산 중 일부를 주식으로 운용하기 위한 사업제안 요청서(RFP·Request for proposal)를 발송했다.

한국은행이 해외 채권에 투자하기 위해 외국 자산운용사에 RFP를 발송한 적은 많았지만 주식 투자에 관한 사업 제안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투자 상품 다변화 및 수익성 강화 차원에서 해외 주식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며 "일단 이달 안으로 외국계 자산운용사들로부터 참여 의사 및 포트폴리오 계획 등을 제출받아 기본적인 데이터를 수집한 뒤 적정 시기를 판단해 투자 규모나 자산운용사 등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안정성을 고려해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우량주 위주로 구성된 환금성이 뛰어난 펀드 또는 주식을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하고 이머징마켓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의 주식 투자 규모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한국투자공사(KIC)에 위탁투자를 약정한 170억~200억달러 수준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한은의 외환 보유액이 필요 이상으로 많기 때문에 적정 수준으로 외환 보유액을 유지하고 초과분은 적극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한편에서는 외환 보유액을 수익률 위주로 위험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을 경우 책임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외환 보유액의 최대 목표는 유동성 확보"라며 "지나치게 수익성 위주로 운용한다면 만에 하나 외환위기와 같은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외환 보유액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KIC라는 별도 기관을 만들어 위탁계약을 맺은 마당에 한은이 또 다른 채널을 통해 주식 투자에 나서겠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