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俊模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비정규직 입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됐지만 8개월째 법사위에 계류(繫留) 중이다. 비정규직 법안은 2004년 정부 입법예고가 이뤄진 후 2년 동안 정치권에서 허송되다가 올 2월27일 환노위를 통과했다. 그간의 논의과정을 살펴보면 공익적 성격의 법 항목에 대해 무리하게 노사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시간을 낭비한 측면이 강하다.

정부의 비정규직 입법예고안은 노동시장 유연성과 차별해소 간 중용의 접점을 찾으려는 고민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환노위를 거치면서 기간제와 파견제는 사용기간이 3년에서 2년으로 줄어들었으며 파견사용 범위도 일부 업종을 제외한 네거티브 리스트(negative list) 방식에서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 방식으로 수정하되 파견대상 업무는 시행령으로 규정하도록 변질됐다. 결과적으로 공익적 성격의 법항목에 대해서 정치권에서 무리하게 노사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시간만 낭비한 꼴이 돼 버렸다.

그간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다양한 안(案)들이 제시됐지만 노동시장 유연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안도 비정규직 보호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기간제와 파견 근로자의 경우 사용기간과 업종 제한을 하면 할수록 또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자로 전환되거나 용역이나 하도급으로 전환될 것이다. 지난 3년간 기업들의 인사노무관리를 살펴보면 반복 갱신해오던 기간제 근로자들을 퇴출정리했고 기존의 파견 근로도 용역이나 하도급 업무로 전환해 왔다.

불법파견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용역이나 하도급의 작업방식도 직접고용 근로로부터 분리변경시키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국회에서 입법안이 통과된다면 기업들은 이러한 변경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며 이는 입법 취지에 반해 비정규직 고용불안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임박해 있는 법안의 보호 취지와 건강한 고용 촉진의 목적 달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입법정책적 의지가 필요하다.

첫째,비정규직 차별판단 기준은 정치(精緻)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환노위에서 의결된 비정규직 입법은 차별해소의 입법목적 달성을 위해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위원회를 두는 것으로 돼있다. 이 법안이 상정한 차별시정위원회의 목적은 '공정한 노동시장 질서 확립'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단순히 임금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다는 인식은 공정한 것이 아니며,생산성에 비해 과소보상할 경우 비로소 차별 시비가 발생하는 것이다.

애매한 판정은 인사노무관리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일자리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음성적 고용을 막기 위해 정부 초안에서 훼손된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가령 파견대상 업무는 현행 규정 유지라는 환노위 수정 취지를 충분히 살려 향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정부초안 수준으로 실질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이는 법사위에서 법을 통과시킨 후 시행령으로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기간제와 파견 사용기간이 3년에서 2년으로 줄어들어 하도급과 용역 근로를 사용할 유인(誘因)이 커지는 고용의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파견대상 업무마저 사용하지 않는 업무까지 포함해 26개로 제한한다면 고용창출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 파견업종의 중간착취가 문제라면 시행기준을 명확히 하거나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면 된다.

비정규직 보호는 노동시장 유연성과 차별해소의 조화라는 대원칙 하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 고용안정을 유지하던 유럽 국가에서 차별해소 판결은 엄격하게,그리고 보수적으로 운용해 왔던 행간을 읽어야 한다. 경직적 입법이 실업자를 증가시키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부추길 수 있음을 지난 3년의 과도기는 잘 보여준다. 일자리 창출을 한다면서 일자리 창출에 반하는 입법정책이 이뤄져서는 곤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