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상당한 재력가였다. 그는 죽기 한 달 전에 작성한 유언장에서 칼과 은식기 등 가재도구 하나하나까지 상속자를 지정하고 가난한 이웃에게도 온정을 아끼지 않았다. 사이가 나빴던 8살 연상의 아내에게는 침대와 가구 몇점만을 물려줬고,건달이라고 미워한 둘째 사위에게는 단 한푼도 주지않았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처럼 완벽하게 재산유언을 한 사람 중엔 알프레드 노벨이 꼽힌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세계인들이 선망하는 노벨상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장 수완이 좋은 억만장자로 불렸던 하워드 휴스는 유언장을 남기지 않아 한동안 유산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을 누린 휴스에게 유언장 따위는 귀찮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든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재산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유언장을 통해 재산을 분배하곤 한다. 서구에서는 장례식을 치른 후 변호사가 직계가족을 모아놓고 유언장을 공개한다. 여기에는 금과옥조의 유언도 있지만 재산분할이 주된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죽음'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 생전에 돈이나 재산얘기를 꺼내는 것을 터부시한다. 이런 까닭에 유산을 둘러싼 배우자나 자녀들 간의 다툼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유언장을 작성한다 해도 법적인 효력을 고려하지 않은 형식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연세대와 사회사업가 유족들간의 '날인 없는 유언장'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어제는 법정다툼에서 패소한 연세대가 유언장의 요건을 규정한 민법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기에 이르렀다.

유언장 작성을 꺼리는 우리 사회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은행과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언장의 작성·보관·전달 등의 서비스를 확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산으로 인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관심을 가질 만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