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柱善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정부와 여당은 일전에 출자총액제한 규제에 대한 개선 입장을 발표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이 규제의 명분은 소유-지배 괴리의 심화, 선단식경영으로 인한 기업집단 동반 부실화, 부실 계열사 부당지원의 폐해를 야기하는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시정해 무분별한 계열 확장을 억제함으로써 기업집단이 핵심역량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순환출자 문제에 대한 정책대안(代案) 마련 후 이 규제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토되고 있는 대안들로는 순환출자 직접규제, 지주회사 전환유도와 사업지주회사 의제, 일본의 사업지배력 집중 규제 원용, 이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집단소송제 확대 등이 있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앞에서 열거한 규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출자총액제한 규제는 기업의 신규사업 진출,구조조정 등에 직접적인 제약을 가해 기업으로 하여금 업종, 투자규모, 구조조정 방법 등 경쟁의 최적(最適)수단을 선택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경영권 방어 장치가 별반 없는 상태에서 우리나라 알짜 기업들을 역차별해 외국기업의 적대적 M&A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키게 한다.

둘째, 이 규제가 선단식(船團式)경영으로 인한 동반부실화를 방지하고 핵심역량에 집중하도록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폐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 규제는 기업의 최적 경쟁수단 선택을 방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산업으로 신속하게 이동해 핵심역량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함은 물론, 신속한 구조조정의 지체와 비용확대로 동반부실화를 초래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규제는 도입목적과는 달리 심각한 역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나쁜 규제이다.

셋째, 순환출자가 소유-지배 괴리의 심화를 비롯한 모든 문제의 근원이냐는 점이다.

실제로 순환출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채무지급보증, 부채비율 등 기업집단 관련 규제들이 대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도입되는 시점에서 기업들이 정부가 부과한 다른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계열사 출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순환출자가 늘어나는 것은 기업집단 총수일가의 재산증식과 경영권 승계과정뿐만 아니라 합병, 재산의 사회환원, 상장시 주식분산 요건 충족 과정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현 시점에서 순환출자에 대한 직접규제를 강행(强行)하거나 그 해소시점까지 의결권을 제한할 경우 해당 기업집단은 사실상 해체나 적대적 M&A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과연 이 규제의 실익은 무엇인가?

넷째, 현재 검토하고 있는 네 가지 다른 대안들도 기업부담을 가중시킬 뿐 현실적으로 그 규제의 목적을 확실하게 실현시킬 수 있는 정책대안들이 아니다.

지주회사 전환 유도 또는 의제는 지주회사 제도가 여타 제도보다 우월한 지배구조라는 것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논의되고 있다.

만일 지주회사가 최선의 기업조직이 아닐 경우 이러한 정책적 유도의 폐해와 손해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설사 지주회사 유도로 순환출자의 폐해를 정리할 수 있을지라도 그 이익이 기업집단 구조의 계열사간 출자의 강점이 사라지는데 따른 손해보다 더 큰지조차 알 수 없다.

일본식 사업지배력 집중 규제는 출자총액제한 규제의 그림자를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중대표소송제 도입이나 집단소송제 강화는 과연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해 제도를 정비하는 것인가를 재고(再考)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아무런 조건없이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폐지하고 이미 도입된 대표소송제, 증권집단소송제, 결합재무제표 작성, 사외이사제도를 포함한 내부견제 장치, 강화된 공시제도 등의 실효성 제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부가 염려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면서도 기업 부담을 최소화해 경쟁력을 높이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