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를 비롯 13개 노조가 금속산업노조로 전환키로 결정하자 민주노총은 마치 전쟁에서 큰 승리나 한듯 환호성을 질렀고,재계는 포로가 된 것처럼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다.

민주노총은 노동계의 정치 세력화를 통해 더욱 쉽게 사용자와 정부를 압박할 수 있게 된 것에 고무된 것 같고,재계는 '공룡노조'의 출현으로 노조에 질질 끌려다니지나 않을까 겁을 먹고 있는 분위기이다.

유럽 등 선진국 노조들이 잇달아 산별체제 대신 기업별 체제로 전환하는 마당에 우리 노조만 거꾸로 가는 게 도무지 이해되진 않지만 돌이킬 수 없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사·정 각자는 과거 기업별 체제에서 물들었던 갖가지 악습을 떨쳐내는 일이 시급하다.

기업별 체제와 산별 체제의 '달콤함'만 챙기는 '무늬만' 산별로는 노사 모두에게 득될 게 없기 때문이다.

먼저 노조는 기업별 체제에서 누렸던 독점적 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별교섭은 전체 노조원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개별노조가 가진 채용 권한과 이권 등 갖가지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 산별교섭을 벌이고 있는 금속 보건의료 택시 금융노조들은 중앙교섭을 끝낸 뒤 지회(사업장)별 교섭때 또다시 터무니없는 임금인상을 요구하거나 충분한 논의없이 협상결렬을 선언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산별 협상체제의 바람직한 방향이 결코 아니다.

재계가 산별교섭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조사무실을 공장밖으로 이전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산별노조 체제를 갖춘 선진국에선 공장안에 노조사무실이 있는 기업은 한 곳도 없다.

단위노조는 중앙의 산별노조에 교섭권을 위임하기 때문에 사업장내 노조사무실과 노조전임자는 사실상 필요가 없어진다.

사용자 역시 산별교섭이 시행된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원칙을 갖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내년도 단위사업장내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전임자 임금지급도 함께 금지된다.

선진국에선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기 때문이다.

노조도 독립성과 자주성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기 때문에 회사의 임금지급을 오히려 불명예스럽게 여긴다.

우리 노동계가 전임자 임금을 대놓고 요구하는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노동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부나 국회도 산별체제에 대한 노동계의 책임있는 행동을 강력히 주문해야 한다.

"노동행정을 가슴으로 펼친다" "약자인 노동계의 사정을 감안해 산별이 필요하다" 등 변종의 산별교섭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이 여당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관계자 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경우 무늬만 산별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국내 산별교섭은 엄밀한 의미에서 산별체제가 아니고 산별교섭과 기업별교섭을 포개놓은 형태이다.

재계가 산별교섭에 대해 이중 삼중의 교섭비용이 든다며 손사래를 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국민들은 노조를 무책임한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노조는 국가나 기업이 망하든 말든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늬만' 산별교섭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노사관계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