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전쟁의 최전방에는 늘 이들이 있다. BI(Brand Identity) 디자이너. 사전적 의미는 제품의 특성을 시각적으로 디자인해 대외 경쟁력을 강화하는 브랜드 이미지 통일화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전문가.

디자인 전문회사 'CI(Cool Impression)'의 강영길 실장(34·여)은 "제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술사"라고 소개한다.

그는 1988년부터 BI 디자인을 한 베테랑이다.

상명대에서 공예를 전공한 강 실장은 대학 졸업 후 금강기획에서 광고디자인을 한 전력이 있다.

"단발에 그치는 광고작업보다는 장기적인 디자인 업무를 해보고 싶었어요."

외환위기 때 다니던 프로모션 제작팀이 공중 분해된 것을 계기로 그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BI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BI 작업은 다른 디자인 분야에 비해 마케팅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돼 있어요."

제품의 이름을 붙이는 네이밍 작업을 비롯 그 제품에 어울리는 전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패키지 구상과 디자인 등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자체적인 시장조사와 자료조사는 필수다.

보통 클라이언트가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경쟁업체 서너 곳을 선정한다.

디자이너들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제품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타깃 가격대 속성 경쟁제품 등을 파악한 뒤 과학적인 시장조사에 나선다.

이 과정이 끝나면 BI 디자인 작업에 들어간다.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클라이언트에게 기안 몇 개를 제시하고 이 중 하나가 채택되면 제품 탄생.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작업이 과학적이어야 해요."

2년 전 론칭한 두산그룹 커피전문점 '렌떼'의 경우 시장조사 항목이 연관성 호감도 차별성 상기도 심미성 등 다각적이고 치밀했다.

"디자인 작업에 충실하면서 마케팅 작업도 병행하니 클라이언트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CI의 한 해 매출은 15억원 정도로 업계 상위권이다.

강 실장의 손을 거쳐 시장에 나온 '자식'은 꽤 많다.

빙그레 과일라떼,요플레,메로나,몽쉘통통,켈로그 첵스 등의 식료품을 비롯 울산현대 축구팀 유니폼,제약회사의 펀(fun)마케팅,병원과 대학교의 로고 등 다양하다.

"켈로그 첵스의 경우 아시아 모든 나라에서 우리가 만든 디자인을 사용할 정도였어요.

참 뿌듯했지요."

대개 프로젝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디자이너 한 명이 여러 업무를 맡는 건 기본이다.

야근이 잦기 때문에 강한 체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에 대한 열정이 가장 중요하죠.미쳐있어야 돼요." 매킨토시로 작업하기 때문에 컴퓨터 능력은 기본이다.

이 업계의 초봉은 1600만원 선으로 약한 편이다. 일 자체가 초년병에겐 일종의 '인턴과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연봉이 세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베테랑이 될수록 연봉이 오른다. 8년차 팀장급 연봉이 5000만원 선. 연봉 외에 대박을 터뜨리는 명작을 내면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삼성전자와 같이 큰 회사에선 자체 BI업무를 전략적으로 키우며 스카우트하는 과정에서 연봉이 크게 오르기도 한다. 창발성과 기획력 2가지를 다 갖춰야 하기 때문에 팀장급 베테랑이 배출되기 힘들고 그만큼 중도에서 탈락하는 이들도 많다. 이화여대에 디자인 경영대학원과정이 있고 한국디자인협회에서도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과학적인 자료조사는 물론이고 선진 외국의 사례를 보면서 트렌드도 연구해야 하니까요."

자신이 생명력을 불어넣은 제품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볼 때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강 실장은 "앞으로 마케팅 공부를 좀 더 깊게 해서 BI 전문경영인으로 커리어를 키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