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개 계열사를 이끌며 작년 한 해 85조원의 매출을 올린 국내 재계 서열 2위 현대ㆍ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24일 오전 9시55분 서초동 대검 청사에 모습을 나타냈다.

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비자금 조성과 계열사의 부채 편법 탕감을 지시한 혐의 등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서다.

정 회장은 검찰의 소환통보 시각인 오전 10시보다 약 5분 이른 9시55분께 02오 4146번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을 타고 대검 청사 정문을 통과했다.

정 회장은 평소 전용차로 2925번과 4146번 에쿠스 2대를 이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임원 1명이 경비실 앞쪽 공간에 주차한 승용차 오른쪽 뒷좌석 문을 열자 정 회장은 천천히 차에서 내려 임원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진회색 줄무늬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 남색 물방울무늬 넥타이를 맨 정 회장은 대검청사 민원실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18개의 계단을 오르는 동안 정 회장은 양 옆에 늘어선 취재진을 흘끔 쳐다보면서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정회장의 표정은 잔뜩 굳었으며 시선은 아래 쪽 계단으로 고정됐다.

계단을 모두 오른 정 회장을 향해 100여 대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약 10초 간 계속됐다.

이어 기자들 3~4명이 정 회장에게 다가가 소감을 묻자 정 회장은 "국민들한테 죄송합니다.

검찰에서 성실히 답변하겠습니다"라고 짧게 답변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사실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따로 대답하지 않고 청사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이날 정 회장 소환 현장에는 100여명의 취재진이 오전 9시 이전부터 취재를 위해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였으며 안전을 위해 100여명의 경찰 병력도 청사 곳곳에 배치됐다.

나흘 전 아들 정의선 기아차사장이 소환되던 날은 구름이 잔뜩 끼고 음산한 날씨였던 데 반해 이날은 화창하고 온화한 날씨를 보였다.

그러나 서울 전역을 뒤덮은 황사 탓에 정 회장이 소환된 서초동 일대는 뿌연 먼지로 뒤덮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대차그룹의 앞날을 떠올리게 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현 기자 eyebrow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