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명이 꿈의 목표예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류승범(26)은 전국 300만 관객이 꿈이라고 웃으며 말할 정도로 출연 영화가 크게 흥행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기대주이자 든든한 배우로 여겨져 왔다.

'주먹이 운다'에서 최민식이 "내가 얘 나이 때 이런 연기를 했나 싶다.

승범이가 내 나이가 된다면 어떤 연기가 나올까"라고 했으며, '사생결단'에서 황정민이 "둘이서 (대사와 연기를) 치고받을 때 느꼈던 대단한 희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말한 데서 그의 능력을 엿볼 수 있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사생결단'을 "나를 버리고 인물에 가장 많이 갔던 작품"이라고 소개하는 류승범을 만났다.

◇"오랜만에 내 마음을 경쾌하게 만든 영화"

'사생결단'이 시사회를 통해 일부 관객에게 선보인 후 좋은 평이 쏟아지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최민식, 송강호, 전도연 선배 등 존경하는 선배들이 격려해주니 기분이 좋았어요.

물론 배우들끼리 싫은 소리는 안해주지만, 그래두요."

오랜만에 자신의 마음을 경쾌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자만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해냈다는 안심도 든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사생결단'은 웰메이드 느와르 영화라 말할 만하다.

마약중간판매상 이상도와 마약상을 잡기 위해 상도를 이용하는 도진광 경장이 미친 듯이 끝을 향해 가는 처절한 몸부림은 관객에게 잠시나마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마약을 다루는 영화, 할리우드에서나 나올 거라고 생각하죠. 근데 우리 가까이에 이렇게 피폐해진 삶이 있더라구요.

'이거 진짜구나' '불특정 다수를 위한 영화인데 이렇게까지 무서워도 되나'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무섭다는 건, 잔인하다거나 공포스럽다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삶이 이토록 처절할 수 있다는 걸 관객이 도리없이 받아들이게 될 때의 감정이다.

"'준비땅'하면 달리는 것처럼 끝까지 달렸어요.

등장인물들이 얽히고설켜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상도를 연기하면서 류승범은 없고 역할에 몰입하자고 했지만, 연기할 때는 거꾸로 이 친구의 계산이 보이지 않도록 삭이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끝까지, 막판까지 가다보니 "인물이 주는 카타르시스까지 느낄 수 있었다"고 표현했다.

◇연기하며 느꼈던 오만가지 감정들

시사회를 보고 나서 임창정이 "박장대소하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의 쉼표는 도진광과 이상도의 미행 몽타주 신과 틈틈이 상황과 대사가 주는 웃음이 고작이다.

지독한 상황 설정에 이 정도만 해도 관객은 큰 숨을 내쉴 수 있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웃음이 나올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
"아무리 막장까지 내달리는 인생이라고, 한번도 웃지 않겠어요.

사는 게 그렇잖아요.

힘들고 괴로워도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도 웃음이 나오는 거 아녜요?"

영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해야 해 한번 쉬어가면 다시 객석의 긴장감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계산을 했다.

생존을 향해 동료와 선배를 배신하는 행위도 일삼는 이상도의 또 한 가지 주요한 감정은 '정'이다.

자신을 마약판매상으로 이끈 삼촌과 자신의 이상향이었던 지영(추자현)이라는 여자에게 느끼는 감정. 김희라가 연기한 삼촌과의 관계는 비교적 밀도 있게 그려졌지만 지영과의 관계가 편집에서 꽤 잘려나간 게 아쉽다.

"삼촌은 비록 애증을 넘어서 '한'이 돼버린 존재이지만, 막상 삼촌의 파국을 앞에 두고선 이 지구상 단 한명 남은 혈육이라는 걸 인식하는 것 같아요.

혈육이 싫을 때는 남보다 더 싫죠. 그러나 두려운 현실, 떨리는 현실과 맞닥뜨리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데, 혈육은 그때 '땡기는' 건가 봐요."

이러저러한 숱한 감정들을 한꺼번에 연기해야 했던 이상도가 그래서 그에게 고민이었고, 벅찬 상대였지만 해내고 났을 때 성취감도 크게 줬던 인물이다.

◇이제야 겸손하게 보이는 관객이란 존재

한동안 그는 관객을 믿지 못했다고 한다.

건방지고 오만했다고도 실토했다.

'도대체 관객은 영화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라며.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저 역시 대중이 좋아해주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더라구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내 취향의 문제이지 수준 미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은 없었습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취향을 분명히 탈 수 있는 '사생결단'을 100만 관객이 4번쯤 봐줬으면 좋겠다"며 허허 웃는다.

"저만 잘하고, 제 생각을 잃지 않아야겠죠. 제가 산에 올라가 있다고 바다에 있는 사람에게 산이 좋으니 산으로 오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는 좋은 사람과, 좋은 작품을 선택하는 일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 있을 때 가장 많이 공부가 돼 한 작품에만 집중하면서 배워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류승범은 "아직은 힘들지 않고 지치지 않고, 보는 분들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아 하는 것 같으니(웃음) 올해까지는 쉬지 않고 계속 열심히 작품에 임할 것"이라는 약속을 한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