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유엔 정상회의 참석은 한국의 세계속 위상을 제고하고 유엔내 역할을 재정립하는 전기가 됐다는 데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존 동북아의 역내 틀에서 벗어나 인권과 테러, 만약, 빈곤 등 범세계적 이슈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부합하는 국제적 위상을 과시하고 외교적 역량을 축적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유엔내 최대 현안인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증설문제에 관한 의제설정에 있어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는 동시에 이해관계를 대폭 반영한 것은 향후 포괄적인 유엔개혁 논의과정을 앞두고 영향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한국외교가 거둔 최대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이번 유엔정상회의 핵심 이슈였던 유엔개혁 논의의 물줄기가 안보리 진출을 노리던 일본 등 G4 그룹의 주도 국면에서 비상임이사국 증설을 원하는 한국 등 UfC 그룹으로 바뀐 것은 한국의 전방위 외교 노력이 낳은 결과라는 데 이의가 없어 보인다. 이미 노 대통령은 지난 4월 독일 순방 때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대면한 자리에서 독일이 속한 G4의 유엔개혁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데 이어 5월 G4안을 지지하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일본의 안보리 진출론에 쐐기를 박는반대 논리를 설파함으로써 안보리 증설주장 확산에 제동을 건 바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반기문(潘基文) 외교장관이 이끄는 외교라인 또한 전략, 전술 면에서 주도면밀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프리카 중견국가인 알제리를 설득해 유엔내 최대 회원국을 보유한 아프리카연합(AU)이 G4 지지 분위기에서 돌아서게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이번 정상회의는 또한 북핵문제가 6자회담 재개로 국면전환이 이뤄진 시기에 때맞춰 열림에 따라 노 대통령에겐 실질 협력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한편 한반도 및 동북아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지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이를 위해 노 대통령은 주요국 정상과 연쇄 회동을 갖고 북핵문제를 평화적,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협조와 지지를 요청하는 데 주력했다. 14일 이탈리아, 몽골에 이어 15일 오스트리아, 알제리, 네덜란드 정상과 릴레이 회담을 했고, 13일 뉴욕 도착부터 유엔 기조연설을 전후해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비롯해 약 30개국의 정상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미국과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비롯해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튼 유엔대사 등과 만났고, 귀국 하루전인 15일 개최된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 연례 만찬도 북핵문제에 관한 노 대통령의 확고부동한 뜻을 미국 조야에 전달함으로써 한.미간 우정을 돈독히 하고 이해의 폭을 넓힌 자리였다는 평가다. 6자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한.미 외교.안보라인 간에도 물밑 대화 기회가 마련돼 공조의 틀이 더욱 강화됐다. 특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최고위급간 회동에선 6자회담을 비롯한 외교.안보.국방 등 제반 현안을 놓고 허심탄회한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미동맹과 관련, "미국측도 이제 우리의 솔직한 태도를 더 좋아한다. 비굴한 친구보다 당당한 친구가 낫다는 것"이라며 "한미관계는 이번 노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보다 탄탄하고 견고해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연합뉴스) 성기홍 김재현 기자 sgh@yna.co.kr jahn@yna.co.kr